[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고형렬 ‘아로니아의 엄마가 될 수 있나’

2025-04-28     경상일보

아로니아에게 물을 주어야 하는
아침이다
멀리 해가 지는 영북 바닷가에 와서
수평선 불빛과 마음을 맞추다 눈 떳을 때

제일 먼저 눈앞에 아로니아가 나타났다
아로니아
왜 물을 들고 오시지 않는 거죠
세번째 잎을 피워냈어요

나는 어느새 아로니아의 엄마가 되었다
아끼는 것이 안에 있는 사람은
밖에 나와 오래 머물 수 없음을 알지
아름다운 것이 맨 나중에 온다면
가장 아름다운 시는 모든 것의 맨 끝에
서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설악의 첫 아침 능선을 종부돋움하고 있을
삼년생 기다림에게
앉아서 등을 내주고 뒤돌아보며
나는 나를 기다리는 아로니아가 된다


아름다운 관계는 서로를 성장시켜

개나 고양이, 식물처럼 돌봄이 필요한 존재를 두고 집을 떠나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아끼는 동식물이라면 밖에 나와 있어도 안테나는 늘 집을 향하게 마련이다.

화자도 바닷가에 와 있으면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로니아이다. 아로니아는 화자에게 물을 달라고 하며 세 번째 잎을 피웠다고, 자라고 성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아로니아는 화자에게 식물 이상의 의미가 있다. 화자는 그것을 아로니아의 ‘엄마’가 되었다고 표현한다. 엄마는 자녀를 헌신적인 사랑으로 돌보니, 아로니아가 그만큼 소중한 존재라는 뜻이다. 이러한 관계 맺음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것은 오랜 시간과 기다림이 필요하므로 맨 나중에 오고 맨 끝에 서게 된다. 가장 아름다운 시처럼.

아로니아는 삼년쯤 지나면 열매를 맺는다. 기다림이 결실을 보자 화자의 시선은 이제 내부로 향한다. 화자 스스로 자신의 아로니아가 된 것이다. 돌보는 존재에서 돌봄을 받는 존재로, 자신이 자신을 돌본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발견과 성찰을 의미한다. 키를 돋우려 발끝으로 선다는 의미인 ‘종부돋움’이란 말처럼 아름다운 관계는 서로를 성장하게 하니, 자신을 기다릴 줄 아는 화자도 그러할 것이다.

송은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