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디지털화폐 시대,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2025-05-07     경상일보

요즘은 지갑을 꺼내는 일보다 스마트폰을 여는 일이 더 익숙해졌다. 이른바 ‘현금 없는 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화폐의 개념도 바뀌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전 속에서 탄생한 ‘디지털 화폐’는 단순한 결제 수단을 넘어 금융 시스템과 경제의 구조까지 바꾸고 있다. 특히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는 기존 금융질서와 잘 어울리면서 디지털화의 이점을 적극 수용하는 형태로 주목받고 있다.

디지털 화폐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암호화폐. 블록체인 기반의 탈중앙화 자산으로 비트코인이 대표적이다. 익명성과 탈규제의 특성상 투기적이며 가치 변동성이 크다. 둘째, 스테이블코인. 법정통화나 실물 자산에 연동되어 가치를 안정시키려는 디지털 자산이다. 테더(USDT), USD 코인(USDC) 등이 있다. 셋째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법정화폐인 CBDC다. 중앙정부가 통제해 안정성이 높고 기존 통화체계와도 연계된다.

전 세계가 CBDC에 주목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현금 사용이 줄고 암호화폐가 확산되며 통화정책의 효과성은 약화되고 있다. 이에 대응해 디지털 화폐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를 시범 운영 중이며 유럽중앙은행과 미 연준도 디지털 유로·달러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은행도 금융결제원 및 민간 기업과 협업해 CBDC 파일럿 시스템을 구축하고 모의실험을 진행 중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은행은 2025년 4~6월 약 10만 명을 대상으로 ‘프로젝트 한강’이라는 실거래 테스트를 실시하고 있다. 은행 계좌의 현금을 ‘예금 토큰’으로 전환해 교보문고, 세븐일레븐, 농협하나로마트 등 가맹점에서 사용하는 방식이다. 국민·신한·하나은행 등 7개 은행이 참여하며, 서울시의 청년·문화 바우처, 대구시의 보육 바우처, 신라대의 청년·소상공인 바우처와 연계돼 디지털 바우처의 효율성과 투명성도 검증 중이다.

그러나 장밋빛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개인정보 보호, 기술 인프라 비용, 금융기관 역할 변화 같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특히 ‘프로그래머블 머니’로서 특정 조건에서만 사용 가능한 통화 설계는 정부 통제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해킹, 시스템 장애, 국제 호환성 문제 등도 넘어야 할 산이다.

디지털 화폐는 경제 영역을 넘어 교육의 장에도 깊이 침투할 수 있다. 예컨대 디지털 바우처를 통한 교육비 지원은 지출의 투명성을 높이고 실시간 모니터링을 통해 부정수급을 방지하는 수단이 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교육 대상자들의 디지털 금융 이해력(digital financial literacy)을 강화하는 일이다. 초·중등 교육과정에서도 금융 소비자로서의 책임과 윤리, 암호화폐의 리스크, 디지털 지불 시스템의 구조 등을 다루는 교육이 확대돼야 한다. 단순한 기능 활용을 넘어 디지털 화폐와 관련된 개인정보 보호, 사이버 보안, 경제 윤리까지 포괄하는 디지털 시민교육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특히 청소년기부터 화폐를 물리적 실체가 아닌 ‘디지털 정보’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경제 활동에 대한 관점도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필자는 대학에서 ‘메타버스와 가상경제’라는 과목을 운영하고 있는데 많은 학생들이 가상공간 속 경제 구조와 디지털 자산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강의 과정에서 디지털 화폐를 다루며 느끼는 것은 이 주제가 단순한 기술이나 유행을 넘어서 교육의 영역에서 반드시 다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청소년들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게임 내 거래나 NFT 콘텐츠 제작은 이미 실질적인 경제 활동이다. 그러나 이를 교육적으로 안내하거나 제도적으로 통제할 기준은 아직 부족하다. 학교는 학생들이 단순한 사용자를 넘어 디지털 경제의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체계적이고 실천적인 커리큘럼을 갖출 필요가 있다. 학습자는 기술의 원리를 이해하고, 경제적 판단과 윤리적 선택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한다.

디지털 화폐는 결국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선택과 운영의 문제다. 모든 것을 디지털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놓칠 수 있는 ‘신뢰’, ‘정책’, ‘교육’의 영역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디지털 화폐의 미래는 달라질 것이다. 변화를 피할 수 없다면, 능동적으로 설계해야 할 때다.

이미화 동의대 교직학부 교수 동의대메타버스교육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