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고령자 맞춤형 재난 대응 시스템 구축, 지금이 골든타임
최근 발생한 경북·경남 지역의 대형 산불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무려 31명이 목숨을 잃었고, 이 가운데 80대 이상 고령자의 희생이 가장 많았다. 울산 울주군 온양과 언양에서도 1190㏊(헥타르)에 달하는 산림이 불에 탔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이번 산불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닌 사회적 약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난 사례였다.
특히 주목할 점은, 많은 고령층이 재난 문자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채 화마에 휘말렸다는 것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전기와 통신망이 동시에 끊기며 문자 시스템이 무용지물 되었고, 구형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주민이나 스마트폰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은 문자 수신 여부와 관계없이 대피 정보를 인지하지 못했다. 실제로 희생자들의 휴대전화에는 수백 건의 읽지 않은 재난 문자가 남아 있었다고 한다. 문자 알림은 존재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던 셈이다.
현행 재난 경보는 ‘수신 여부’를 기준으로 운영되지만, ‘수신=인지’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이제는 정보가 실제로 전달되었는가를 따져야 하는 시점이다.
고령자의 보행 속도는 일반인의 약 72%, 휠체어 이용자는 약 50% 수준에 불과한데, 이들의 대피를 도울 보조 인력과 교통수단은 충분히 확보되지 못했다. 문제는 단순한 기술 접근성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농촌 지역의 고령화, 홀몸 어르신 증가, 사회적 고립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고령층을 정보 전달의 사각지대로 만들고 있다. 울산 역시 고령 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울주군을 포함한 울산의 산림 인접 지역은 고령 인구 비율이 높고, 산촌·농촌 마을이 밀집해 있어 유사한 재난 발생 시 대규모 인명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금이야말로 대응 체계를 점검하고 보완할 골든타임이며, 지금도 어딘가에서 재난 속에 홀로 남겨질 수 있는 이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이제는 대응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재난 대응이 디지털 환경에만 의존한다면, 일부 시민은 체계밖에 놓일 수밖에 없다. 고령층을 포함한 모든 재난 취약계층을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경보 및 대피 체계의 재정비가 시급하다.
첫째, 지역 맞춤형 정보 전달 체계 도입이 필요하다. 문자 기반 시스템 외에도 마을 방송, 차량 스피커, 무선 경보장치, 사이렌 등 다양한 수단을 연계해 고령층과 청각·시각 약자까지 포괄할 수 있는 다채널 경보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문자 내용도 고령층이 이해하기 쉬운 간단한 문장과 음성으로 자동 전환되는 기술을 도입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둘째, 재난 대피를 위한 이동 지원 체계가 보완되어야 한다. 대피소 접근성이 떨어지거나, 차량 지원 없이 이동이 어려운 고령층을 위해 마을별로 최소한의 이송 수단과 인력을 배치하고, 위기 상황에 즉시 투입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거동이 불편한 이들을 위한 ‘맞춤형 대피 계획’도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 지역사회 기반의 공동 대응 시스템이 중요하다. 자율방재단, 주민자치회, 봉사단체 등 지역 조직을 활용해 재난 발생 시 이웃 간 안부 확인과 초기 대응이 가능하도록 평소 연습과 점검이 병행되어야 한다. 정보 전달과 대피가 행정의 책임만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짊어져야 할 과제다.
자연재해는 사회가 누구를 우선으로 보호하는지를 가늠하는 계기가 된다. 울산이 산불 피해에서 비교적 안전했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다. 지금부터라도, 우리의 어르신들이 재난 앞에서 홀로 남겨지지 않도록 대응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재난 약자’라는 말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울산,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야 할 미래다.
백현조 울산시의회 산업건설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