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의 납품가 인하 압박에 레미콘 노사 “현실 외면한 요구”

2025-05-15     오상민 기자
건설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전국적으로 레미콘 납품단가 인하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시멘트·유류비 등 상승 속 레미콘 값 인하는 건설자재 공급망을 위협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14일 지역 레미콘 업계에 따르면, 울산 지역 레미콘 생산량이 줄어들고, 추가 감산(본보 4월7일자 9면)까지 예상되는 가운데 수도권을 시작으로 레미콘 납품단가 인하 흐름은 부산·울산 등 지방권역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대한건설자재협회는 건설사들과 협의를 통해 1㎥당 단가를 수도권 9만1400원(전년 대비 -2300원), 부산권 9만9400원(-1900원)으로 조정했지만, 울산 지역에 대해서는 전년 대비 9000원가량 더 낮게 납품 단가를 잡아 8만원대 후반에서 9만원대 초반까지 인하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은 이미 지난해 기준 전국적으로도 낮은 2000만㎥ 수준의 물량에 그쳤고, 올해 역시 반등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가격 인하 압박은 수익성 악화를 넘어 생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레미콘 제조업체들도 비슷한 입장이다. 시멘트 가격과 유류비가 모두 오른 상황에서 납품 단가만 낮추라는 건 현실을 외면한 조치라는 것이다.

제조업체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협회 명의로 가격을 낮추라고 하지만, 실제 공급선이 흔들리면 결국 건설사들도 피해를 볼 것”이라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단순한 가격 협상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있다. 건설업계의 원가절감 압박이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 비용 절감의 부담이 매번 하청과 현장 노동자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구조적 문제가 이번에도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울산 건설기계노조는 이날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할부차, 보험료 등 고정 지출을 감당하면서 단가까지 낮아지면 버틸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 울산 지역은 지난 2012년 이후 레미콘 제조사들과 노조 간 단체협약을 통해 안정적인 공급 및 노사 협력을 이어온 바 있다. 이러한 구조가 무너질 경우 단가는 물론 지역 건설현장 전반의 인력 수급에도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노조 측 우려다.

이에 대해, 지역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원청부터 책임 있게 나서지 않으면 레미콘 가격 갈등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는 단가 조정을 둘러싼 업계 간 갈등이 아니라 건설산업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묻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레미콘 가격 문제는 일시적 이슈가 아니라, 운송 인력의 유지와 제조업체의 생존, 지역 공급망의 안정이라는 다층적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간 대립이 격화되고 있어 지자체의 중재와 정책적 개입 여부도 주목된다.

오상민기자 sm5@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