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시각]이중 분권, 균형국가의 새 설계도
‘지방시대 구현’은 지난 정부가 국가 균형 발전을 목표로 내세운 핵심 국정 과제였다. 하지만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 전 정권이 교체되고 국정 공백 사태까지 이어지면서 그 비전은 방향을 잃고 흔들리고 있다. 때문에 울산을 비롯한 지방의 주요 현안들이 표류하거나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최근 울산, 부산, 경남의 단체장들이 6·3 조기 대선을 앞두고 발표한 21개 지역 협력사업은 단지 지역 민원을 대변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대한민국이 수도권 일극 체제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지속 가능한 국가 발전도 이뤄낼 수 없다는 절박한 호소가 담겨 있다.
특히 이들은 대통령과 국회의 권한을 조정하고, 중앙과 지방의 권한을 재분배하자는 ‘이중 분권형 개헌’을 요구했다. 국정 시스템의 대대적 재편 없이는 지방의 자립 기반도, 국가의 미래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야 대선 주자들이 반드시 새겨들어야 할 사안이다.
울산이 건의한 광역철도망 구축, 김해~울산 고속도로 건설, 2028 울산국제정원박람회 개최 등 주요 현안은 단순한 지역 사업이 아니다. 울산이 다시 산업수도로 도약하고, 부울경이 국가 경제의 성장 엔진으로 기능하기 위해 필요한 인프라다. 경제뿐 아니라 수도권과 지방의 삶의 격차를 좁히는 중요한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권 교체 시기마다 이들 사업이 흔들리는 상황에서는 지역이 그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다. 국가 균형 발전이 단지 정치적 수사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중앙정부 차원의 일관된 추진력과 제도적 뒷받침이 반드시 필요하다.
대표적인 예가 공공기관 2차 이전이다. 울산을 포함한 비수도권 지역들은 2차 이전을 혁신도시 시즌2의 핵심으로 기대했지만, 현실은 여전히 제자리다. 정부는 로드맵 발표를 2023년에서 2024년, 다시 2025년 하반기로 미뤘고, 지자체 간 경쟁 과열이라는 이유를 들어 실질적 논의조차 피하고 있다.
지방 정책은 단순한 행정 권한 이양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독립적인 지방 정책 집행기구와 실질적인 예산 및 입법 권한이 동반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지방시대’는 구호에 그치고, 수도권 집중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대한민국 산업수도 울산은 국가 경제를 떠받치는 제조업의 핵심축이자, 수출입 물류의 중심지다. 그러나 저출생과 고령화, 인구 유출 등 복합 위기 속에 지역의 활력은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더 이상 지역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국가 차원의 정책적 뒷받침과 인프라 투자가 절실하다.
이번 대선은 단순한 권력의 교체가 아니다. 한국 사회가 직면한 저출생, 고령화, 지방 소멸, 수도권 과밀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국가 전략을 다시 설계하는 중대한 전환점이다. 대권 주자들이 지역의 목소리를 듣고, 깊이 인식하고, 구체적인 실천 계획을 제시하길 바란다.
석현주 사회문화부 차장 hyunju021@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