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매니페스토 선거를 하자
봄바람이 자못 거세다. 거센 바람이 몰아치는 바다에는 성난 파도가 출렁인다. 조타수는 배가 격랑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방향타 운전을 잘 해야 한다. 우리 국민이 그런 조타수 역할을 할 수 있는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택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선거는 주권자인 국민이 투표로 주권을 행사하여 정치적 대표자를 선출하는 절차이자 제도이다. 현대 국가에서는 직접민주주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국민이 대표자를 선출해서 국정 운영의 책임을 부여하는 대의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일반적인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대의민주주의의 수단으로서 선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다수의 지배 체제는 민주주의의 다른 이름이다. 선거는 다수의 지배 체제를 현실 정치에 소환하여 대의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제도적 장치이다.
중요하지 않은 선거는 없다. 일반적으로 모든 선거는 향후의 국정 운영 방향과 국민 생활에 다방면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느닷없는 계엄령 발동으로 야기된 탄핵 정국에 트럼프 변수까지 덮치면서 우리 국민은 내우외환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2중의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를 안정과 번영의 길로 인도할 대표자를 선출해야 하는 선거라서, 이번 6·3 대통령선거의 의미는 여느 선거보다도 더 각별하다.
오늘날의 선거 과정에는 정책 노선과 이념 정향을 달리 하는 다양한 정당과 후보들이, 각자 추구하는 정책을 공약으로 제시하고 국민에게 지지를 호소한다. 국민은 이들이 제시한 것 중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특정 후보가 대표자 자격을 가지는 대통령이 되어 국정을 이끌어 가도록 한다.
어떤 기준으로 대표자를 선택할 것인가? 민주주의 체제의 선거 과정에서 유권자의 의사는 정당 정책에 어느 정도 반영되며, 유권자는 정책을 구체화한 정당의 공약에 대해 현재의 타당성과 미래의 실행 가능성을 평가해 후보와 정당을 선택해야 한다. 다양한 선거 제도가 활용되고 있지만, 현재까지 이런 요구에 가장 잘 부응할 수 있는 선거 제도는 매니페스토 선거가 아닌가 한다. 매니페스토 선거는 구체적 공약 목표, 그 이행 기간과 일정, 그리고 실행 재원 규모와 확보 방안을 포함한 정책 로드맵을 제시해 유권자의 지지를 획득하려는 데 그 핵심이 있다. 정당과 후보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며 타당한 공약을 제시하고, 유권자들은 각 정당과 후보의 공약을 비교 평가하여 대표자를 선택한다.
매니페스토 선거 제도를 도입하면 첫째, 정당과 후보자들의 정책과 공약의 타당성을 세부적으로 검증한 후 대표자를 선출하는 정책선거를 정착시킬 수 있다. 둘째, 정책과 공약을 중심으로 선거가 진행되기 때문에 연고주의, 지역주의, 할거주의, 금권주의 등에 의존할 필요가 대폭 감소하고, 따라서 청정선거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셋째, 국민은 공약으로 구체화된 정책의 수행 결과를 평가하여, 선출된 대표자에게 정치적 책임을 묻고 재집권 여부를 결정하는 책임정치를 유도할 수도 있다.
선거 때만 반짝이고 말 공약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선거 때 제시되는 모든 공약이 이행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이행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국민은 공약의 옥석을 가려 대표자를 선택해야 한다. 이행할 수 없는 비현실적 공약과 이행해서는 안 될 부당한 공약을, 사탕발림으로 그럴 듯하게 포장한 후보와 정당은 경계해야 한다. 비현실적 공약과 부당한 공약의 이행은, 국가 자원의 낭비를 초래하고 국민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정당과 후보들은 미래 지향적이되 현실성과 타당성을 결여하지 않은 공약을 제시하고, 국민은 정치에는 안정을, 경제에는 번영을, 사회에는 질서를, 문화에는 활력을 가져다 줄 공약을 제시한 정당과 후보를 선택해야 마땅하리라 여겨진다. 6월3일 제21대 대통령선거에서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을 기대한다.
신연재 울산대학교 국제관계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