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알프스에 얽힌 이야기]신령이 도를 닦는 산…현대사의 비극을 통째로 끌어안다

2025-05-26     차형석 기자

간월산장 목재 덱 바닥으로 스멀스멀 기어오는 안개를 걷어내며 셀 수 없이 많은 침목을 30여 분 걷다 보면 제출물로 신불산 정상에 닿는다. 허연 궁둥이를 까놓고 퍼질러 앉은 자세로 산마루에 세워 놓은 신불산 정상석과 그 옆에 탑두 없이 쌓아 놓은 탑은 주변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거기다 몽환에 가까운 안개는 이 산의 이름 신불산과 잘 맞아떨어진다.

신불산 명칭에 대한 유래를 정확히 밝혀 놓은 건 없으나 빗돌 뒷면 비음엔 신령이 불도를 닦는 산이라는, 도교와 불교를 섞어 만든 글이 보이는데, 스님이나 처사가 (불)도를 닦는다는 건 들어 봤어도 신령이 불도를 닦는다는 건 처음 들어 봤으니 이해하기 곤란하다.

옛 언양읍지에는 신불산이란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다만 독립된 산 이름 없이 단조봉(丹鳥峰), 왕봉(王峰)으로만 불렸다.

신불산, 불광산, 밝얼산, 부로산 등의 명칭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공통된 점은 순경음 ‘ㅂ’이다. ‘ㅂ’은 백두나 태백, 박달(배달) 등 태양과 가장 빨리 응대하거나 밝음에 조응하는, 높고 웅대하며 신성한 산에만 붙이는 낱소리임을 볼 때 신불산도 신성한 것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유래를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한자 불(佛)이다. 애초 순우리말 불(火)을 한자 불(佛)로 빌리다 보니 의미가 달라졌을 뿐, 불(火)은 밝고 빛난다는 우리말 ‘밝’을 달리 표현한 말이고 신성하다는 ‘감’과 합쳐 읽을 때 ‘감밝뫼’ 곧 신성하고 밝은 산, 그래서 신불산이다.

어쨌든 이 산 우듬지를 왕봉, 왕방이라 불렀다는 것으로 볼 때 대단한 권능을 가졌고, 큰 역적이 날 자리인 역적치발등이라 해서 함부로 묏자리를 쓰지 못하게 하였다는 것으로도 이 산은 매우 신성하다. 그러고 보면 신불산 정상 석 빗돌 뒷면엔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는 산이라 했으니 무리한 해석은 아닌 것 같다.

이렇듯 신불산이 신령스럽고 거룩하다지만, 한편으론 현대사의 비극을 통째로 안은 산이 신불산이다. 신불산은 60년 전 서로 총부리를 겨눠야만 했던 아픈 비극을 감추고 있는데 그만큼 산이 깊고 장대해서 서로가 가진 이념을 쉬이 내려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신불산 정상에서 곧장 가면 ‘억새 바람길’로 불리는 신불평원과 영축산으로 가는 길이 나오고, 되짚어 올라가면 간월재 간월산 배내봉으로 가는 길인 ‘달오름 길’이 나온다. 그 길로 이어진 능동산, 재약산 수미봉, 천황산 사자봉 그리고 죽전 마을까지 연결한 길이 ‘사자평 억새길’이다. 또 백련마을을 거쳐 단조성터를 지나 신불평원으로 이어진 길을 ‘단조성터 길’로 명명해서 영남 알프스 일부를 둘레길로 만들었다. 의미 있는 길이다.

신불평원에 단춤 추는 억새를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입꼬리가 올라가고, 흰추위에 도선 바람 맞아가며 멧부리를 허위 넘어가는 한 산꾼의 고독한 모습은 이 산이 아니고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다.

좌측으로 꺾자 등산화를 들메지 않고는 좀체 걷기 힘든 츠럼바위 길이 나온다. 사람 다님 길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돌 뿌다구니가 기기묘묘하게 서 있는 길이다. 공룡의 등뼈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곰비임비 겹친 바위 위로 몸을 함부로 놀렸다간 천인단애로 떨어질 위험천만한 능선이다. 돌심장을 안고 걸어야 한다. 내 잘 났다고 나부대다가는 천 길 낭떠러지가 기다리니 몸을 바위에 밀착시켜 엉금썰썰 걸어야 한다. 천야만야 깎아지른 낭떠러지 절벽의 중천, 오던 길 가듯 그냥 내쳐 가야 한다. 현애살수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다지만 백척간두에 선 자는 방하착보다는 반드시 집착이 필요한 곳이 이곳이다. 불가의 육근을 총동원하지 않고는 이 길을 걸을 수 없다. 인생무상에 대한 사람이 가질 마지막 결단 ‘감행’이란 이걸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낭떠러지고 벼랑이기에 더욱더 가야 하는 게 감이고 뒤돌아설 수 없는 게 행이다.

황소숨이 절로 나오는 가운데 벼룻길을 외줄 타듯이 걷는 발밑으로 하얀 눈이 들어찼다. 이 산에 들어서 처음 보는 눈에 감탄하면서도 한순간도 몸을 잦바틈하게 놓을 수 없다. 더수구니 쪽으로 난 신경을 바짝 죄면서 걸어야 하는 이 길을 신불공룡능선, 칼바위라 부른다.

어찌해서 공룡능선이란 이름이 붙었는지 캐묻지 않아도 올라서 보면 자동 고개가 주억거려진다. 이 길이 등산객들에겐 필수 코스로 인기가 높다지만 후덜거리는 다리를 주체 못 해 도중에 에움길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 경고문구가 허풍을 떤 것은 아니다. 내려오면서 만나는 도셔놓은 듯한 벼랑길 밧줄들을 보며 이 산은 올라감도 내려섬도 쉬이 허락해주지 않는,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산이다. 그러니 이 산에 숨어들었던 자와 그를 쫓는 자의 삶은 이 칼바위만큼 긴장되며 역사만큼 고단하다.

고빗사위를 무사히 마치고 내려오면 수고했다는 표시로 이 산이 숨겨 둔 마지막 비경 홍류폭포를 보게 되는데 낙수가 햇빛을 받으면 무지개가 서린다는 폭포다.

그 폭포수가 흘러 도달하는 곳 작괘천에서 아낙들은 바위에 달라붙은 싸리고디이(다슬기)를 잡고 떠꺼머리총각들은 밤 천렵에 중태기와 지름챙이를 잡아다가 손으로 스윽 흩은 깻잎과 방아를 넣고 찌개를 끓였다. 탱가리에 쏘인 한 녀석의 엄살에 밤이 이슥하니 깊어지는 줄 모르고 별들이 머리맡으로 떨어지는 때 멍석에 넌 곡식 거둬들이지 않았다고 걱정을 사서 하는 녀석도 그때 산사람이 되었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옆집 꽃분이가 자길 보고 웃었다며 목침을 가랑이에 넣고 자던 녀석도 사라진 지 오래다. 땅보탬이나 됐으면야 이름 모를 나무와 풀이 그 덕에 자랐겠지만, 산객의 마음은 그걸 돌아볼 새 없다.

작은 물고기들의 근심 없이 유영하는 모습과 수천 갈래로 흩어져 떨어지는 윤슬은 산행의 노곤함을 위로받는다. 글·사진=백승휘 소설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