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한영옥 ‘입장(立場) 속으로’

2025-06-02     차형석 기자
만나러 가고 있는 중이다

도움을 주어야 할 입장이다

걸음이 새털처럼 가볍다고 할 순 없다

어디까지 관여해야 훈훈할 것인가

화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받았다는 기억은 시간이 흐른 뒤

여러 가지 태도를 낳기 때문이다

한 태도 때문에 밤샘을 한 적도 있다

그래도 만나러 가고 있는 중이다

말없이 오래 안아주는 느긋한 천성을

오래 부러워만 하며 살아왔다

입장을 바꿔보라는 귀한 조언을

여러 번 귀하게 쓴 적이 있을 뿐

땀을 흘리며 관여한 적은 없었다

거의 다 와 가고 있는 중이다

그의 입장 속으로 입속의 사탕처럼,

혹은 눈이 녹듯 입장(入場)하려 애쓴다

걸음이 점점 빨라지고 있는 건 아니다.



‘역지사지’ 말은 쉽지만 실천 어려워

우리는 쉽게 ‘입장을 바꿔보라’는 말을 한다. 그런데 사실 역지사지가 쉬운 일은 아니다. 물론 생각이야 쉽게 할 수 있겠지만 행동으로 옮기고 실천하는 일은 쉬이 하기 어렵다. 이 시에서는 입장을 바꿔 보라는 흔한 말 속에 숨어 있는 윤리적 실천의 어려움과 용기를 섬세하게 조명하고 있다.

단순한 만남을 넘어 타인의 입장이 돼 보는 것은 진심 어린 공감과 책임이 따르는 일이다. 시의 처음 부분에서도 도움을 주러 가는 입장에서의 책임감과 조심스러움이 드러난다. ‘도움’과 ‘간섭’의 경계는 늘 모호하다. 더구나 도움을 받았던 사람이 나중에 그 기억을 잊고, 혹은 잊은 척하고 태도를 바꾸는 일도 왕왕 있다.

그래도 만나러 가는 것은 타인의 고통을 말없이 껴안아 주는 사람을 오랫동안 부러워만 했기 때문이다. 그 넉넉한 품이 줬던 감동에, 화자는 늦게나마 스스로 움직이기로 한다.

물론 상대의 입장(立場)으로 입장(入場)을 할 때는 입속의 사탕이 녹듯 서서히 스며들어야 한다. 요란한 입장은 반감을 불러온다. 요컨대 이것은 태도의 문제다. 도움을 받는 사람이든 주는 사람이든, 서로를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태도가 필요하다. 인간관계는 여전히 어렵다.

송은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