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문인화 산책]자연에서 만난 ‘부조화의 미’에 생기를 불어넣다

2025-06-09     차형석 기자
예술이 추구하는 경계는 본래의 생명을 회복하는 것이다. 계절은 봄을 지나 여름의 길목에 서 있다. 맑았던 하늘에 금새 검은 먹구름이 산을 에워싸고 인적이 끊긴 산골 소나무 아래 차가운 옹달샘에 작은 남생이가 목을 내밀다 떨어지는 굵은 빗줄기에 놀라 맑은 물속으로 숨는다. 남생이의 몸짓에서 자연 속 생기를 느낀다.

거북(龜)은 수명이 긴 동물로 힘과 인내와 장수를 상징한다. 예부터 거북은 육지에서도 물에서도 살 수 있는 데서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상서로운 동물로 여겨졌다. 조선시대에 거북은 길상과 장수를 상징하는 ‘십장생(十長生)’의 하나로 좋은 일을 가져다준다는 의미를 상징했고, 거북은 실제로 존재하며 수명이 길어 장수뿐만 아니라 예지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여겨졌다. 귀갑을 불에 태워 갈라지는 선(線)을 보고 길흉을 판단했다. 점을 칠 때 쓰였던 복사(卜辭)로 그 새긴 문자를 갑골문(甲骨文)이라 한다. 또한 ‘삼국유사’에는 ‘구지가’(龜旨歌)라는 노래가 전하는데 여기서 거북은 가락국의 시조인 수로왕(首露王)을 상징하는 하는 동물로 등장한다. 이같이 거북은 황제의 궁이나 묘 주변 등에 그림이나 조각으로 표현돼 왕조의 장수를 기원하는 상징으로 사용됐으며 그래서 예부터 거북은 예술작품에 영감(靈感)을 주고 있다.

암각화는 바위나 동굴 벽면 등에 새기거나 그린 그림, 즉 바위 그림을 뜻한다. ‘반구대 암각화’는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에 있는 선사시대의 암각화로 1995년 6월23일 국보로 지정됐다. 높이 4.5m, 너비 8m(암면 기준) 면적의 바위 면에 고래·개·늑대·호랑이·사슴·멧돼지·곰·토끼·여우·거북·물고기·사람 등의 형상과 고래잡이 모습, 배와 어부의 모습, 사냥하는 광경 등이 새겨져 있다. 탁월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그려진 사실적 그림과 추상적 도상들은 당시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흔적과 예술성을 보여주고 있다.

화가는 자신이 보고 느낀 자연의 물상을 자신의 관점으로 재구성해 보여준다. ‘생명의 노래’에는 작가의 유년 시절의 추억이 담긴 봉계혹돌, 반구대암각화의 바위 표면의 거친 질감, 바다에서 유영하는 듯한 거북의 형상이 한 화면에서 펼쳐지고 있다. 바위의 거친 표면에는 마치 거북의 등껍질 같은 기하학적 추상선(抽象線)이 파도의 물결처럼 퍼져가고, 표면에 형상을 새긴 듯한 추상적 상징이 드러난다. 이 작품에는 바위 표면과 거북의 등껍질의 형상을 교차하면서 이야기 속 또 다른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자태는 심원함에서 생기고 뜻은 심원함으로 운치를 띈다(態以遠生 意以遠韻)”라고 했다. 심원함은 작품의 깊이감을 말하고, 작품의 내적 사유의 축적이 작품의 심원함을 만든다. 그래서 작가는 끊임없이 자연을 관찰하고 그 뜻을 담아내야 한다.

거북은 예부터 종교적인 의미나 철학적인 가치를 담고 있으며 거북을 그릴 때는 형태적인 것도 그리지만 그 속에 숨겨진 있는 집약된 상징을 담아낸다. 특히 등껍질의 형태나 색채, 거북의 자세나 눈빛 등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로 치환한다. 이를 통해 그 안에 담긴 의미가 독자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선과 면은 불가분의 관계다. 선을 갖지 않고서는 면이 끝나지도 않고, 시작을 하지도 못한다. 거친 돌 표면의 구멍나고 쭈글쭈글 주름진 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강한 전율을 휩싸이게 하는 미적 충동을 일으킨다. 그것은 반듯한 것이 아닌 일그러짐에 의해 나타난 부조화와 비대칭에서 오는 자연스러움이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것으로 추(醜)의 미다. 이른바 미추(美醜)는 인간이 만든 인위적인 고정된 형식이 아니라 사유의 빛에서 발아하고 미에 대한 몰입과 탐구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같이 화가는 자연에서 만난 작은 못생긴 돌에서도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 그것이 그림이 가지고 있는 힘이자 매력이다.

글=김찬호 미술평론가·그림=이재영 문인화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