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사 위험 높지만 ‘숨은 환자’ 수두룩
2025-06-18 차형석 기자
◇진단·치료 어려운 희귀질환…6000명 추산
폐고혈압은 전 세계 인구의 1%에서 다양한 원인에 의해 생기는 중증 난치성 질환이며, 국내 유병 추정 인구는 약 50만명으로 알려져 있다. 폐고혈압은 원인에 따라 5개의 분류군으로 나뉜다. 각각은 폐동맥고혈압, 좌심장질환, 폐질환, 만성혈전색전폐고혈압, 기타 다요인성으로 나뉜다.
이 중 1군인 폐동맥 고혈압(PAH)은 전체 폐동맥고혈압의 3%에 해당하며, 폐소동맥의 증식과 폐쇄로 압력이 증가해 폐소동맥쐐기압이 15mmHg 이하, 폐혈관 저항 2 Wood units 초과로 진단되는 심장과 폐를 연결하는 폐동맥의 혈압이 상승하는 희귀난치성 질환이다.
동강병원 정성윤 전문의는 “이름 때문에 고혈압과 비슷한 만성질환으로 생각될 수 있으나 전혀 다른 질환”이라며 “폐동맥 고혈압은 폐동맥의 압력 증가로 인한 우심실 기능이 손상 및 호흡곤란으로 적절히 치료하지 않으면 돌연사 위험이 높다. 질병의 진단이 어렵고 치료하지 않을 시 평균 생존 기간이 2~3년으로 치명률이 매우 높은 고위험 질환이다”라고 설명했다.
폐동맥 고혈압은 환자 수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데 2010년 1677명에서 2019년 기준 3003명으로 9년간 2배 가까이 늘었다. 폐동맥 고혈압은 증상이 비특이적이며 낮은 인지도로, 대한폐고혈압학회는 폐동맥 고혈압 환자가 60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이 중 치료 중인 환자는 1500명에 그치고 나머지는 ‘숨은 환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처럼 환자 수가 적고, 조기 진단이 쉽지 않아 폐동맥고혈압은 희귀질환으로 지정돼 있다.
폐동맥 고혈압으로 진단 받기까지 기간이 평균 1.5년으로 치료 적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정성윤 전문의는 “진단이 늦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폐동맥 고혈압의 증상이 호흡 곤란, 만성 피로, 부종 등 다른 질환에서도 나타나는 비특이적인 증상을 나타내기 때문에 의심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라며 “또한 폐동맥고혈압은 일반적인 고혈압처럼 혈압계로 진단하는 것이 아니라 심초음파 및 심도자술을 통해 폐동맥의 혈압을 측정하고 특수 혈액검사 등 여러 검사를 통해 진단을 내릴 수 있어 확진을 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유없이 숨 차고 피곤하다면 의심을
폐동맥 고혈압은 중년 여성에서 자주 발견되며, 이차성 폐동맥 고혈압이라 불리는 자가면역 질환자에서 발생하는 폐동맥 고혈압 또한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높은 발생 빈도나 치명률을 고려할 때 자가면역질환 환자라면 비특이적인 증상에도 폐동맥 고혈압을 미리 의심하고 확인을 위해 심장 초음파 등의 검사를 시행하는 것이 권유된다.
정성윤 전문의는 “불행하게도 폐동맥 고혈압은 아직 완치법이 없다. 폐동맥 고혈압은 진행성 난치 질환으로 조기에 발견해 적절한 치료를 통해 최대한 진행을 늦추는 게 치료의 핵심”이라며 “폐동맥 고혈압의 치료법이 없던 1992년 이전에는 평균 생존기간은 진단 후 2~3년이던 것과 비교해 혈관확장제 등 폐동맥의 혈압을 낮춰 주는 다양한 약제 등이 개발되면서 생존률이 3배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현재 10여종 이상의 약물이 개발되는 등 치료법은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상태다.
폐동맥 고혈압 치료제는 일정하게 복용해야 효과가 유지되며, 갑작스런 치료제 중단은 심각한 증상 악화를 유발할 수 있다.
정 전문의는 “치료의 접근도 진단 초기에 질환의 정도에 따라 공격적으로 치료할 경우 기능적 호전뿐 아니라 생존률 향상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며 “작용 기전이 다른 2개 이상의 약을 병용해 사용하면 기대 생존율이 7.6년으로 증가한다는 보고들이 있으며 이런 이유로 진단 초기부터 치료 약물의 2제, 3제 병용요법을 권장하는 글로벌 치료 지침이 생겨나게 됐다”고 말했다.
이런 공격적인 치료를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을 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 3년 생존율이 95.7%, 미국의 73%로 두드러지게 향상됐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질병이 어느 정도 진행한 고위험군에서 병용요법 급여를 인정하며 또한 병용요법에 쓰이는 약제도 한정돼 치료제 선택에도 제한적이었다. 많은 노력 끝에 국내 폐동맥 고혈압 환자의 생존율은 과거 3년 평균 생존율은 54.3%에서 5년 평균 생존율 71.5%로 많은 향상이 이뤄졌으나 특히 일본 등 기타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 전문의는 “폐동맥 고혈압의 가족력이 있거나, 자가면역질환이 있는 환자 또는 특별한 이유 없이 숨찰 때는 폐동맥 고혈압을 의심하고 전문가와 상담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차형석기자 stevecha@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