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의료기관 인증제에 대해
필자가 일하고 있는 울산병원은 얼마전 보건복지부의 4주기 의료기관 인증평가를 통과했다. 인증 유효기간은 4년이며, 4년 후엔 5주기 의료기관 인증평가를 받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 종합병원들 중 인증평가를 통과한 병원의 비율은 66% 정도며, 비율이 이 정도에 불과한 건 나름의 이유가 있다. 오늘은 이 ‘의료기관 인증제도’에 대한 경험담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의료기관 인증제란 특정 병원이 환자의 안전과 의료의 질에 대한 기준을 충족했는지, 그리고 기준을 충족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지 평가하는 제도다. 의료기관 인증원에서 파견된 위원들이 4일간 상주하며 규정, 현황, 시설 등 병원의 모든 면들을 거의 뜯어보다시피 검사한다. 이 병원만의 특정 비전이 있는가 등 기업 목적의 요소부터, 의료진이 환자를 혹여 헷갈리지 않도록 성함과 생년월일을 반복해 묻는 환자확인이 절차상 어떻게 몇 번이나 이뤄지고 있는지 등의 환자안전 요소, 감염성 폐기물이 이동하는 동선과 소독된 청결물이 이동하는 동선 분리 등 감염관리 요소, 이러한 사안들의 기본이 규정화되는 규정집의 건실여부까지. 환자안전과 의료질이라는 가치를 위해 어떠한 활동들을 하고 있는가를 평가한다. 예를 들어놓으니 간단해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병원에는 수많은 평가들이 있지만 의료기관 인증평가는 그 중 가장 강도가 높다.
인증제가 영향 받은 외국 제도들 중 대표적인게 미국의 JCI 인증제다. 재밌는 건 미국의 경우 보험회사들이 JCI 인증을 정착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JCI 인증을 받은 병원에 해당보험에 가입한 환자를 연결하고 아닌 병원에는 보험혜택을 거둬서 환자를 제한하는 식이다. 우리나라에도 국내 의료기관 인증과 더불어 JCI 인증을 받은 서울의 대형 대학병원들이 있는데 이 제도 초기에 미국의 보험사들에서 JCI 인증을 받은 국내 병원으로 환자를 공식적으로 의뢰하는 사례가 기사화 된 바 있다. 외국 민간보험사가 나선다는 건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 인증을 통해 안전함을 갖춘 병원들에서는 감염부주의 및 의료과실을 통한 환자상태의 악화, 입원기간의 장기화 등등의 사례가 그렇지 않은 병원에 비해 낮고 보험금 역시 상대적으로 적게 나간다는 것이다. 인증이 단순히 가치선언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는걸 엿볼 수 있다. JCI를 참고한 국내인증 역시 마찬가지다.
인증제는 병원의 종류에 따라 방식도 여러 가지고 필수 여부도 갈리는데 소위 3차병원으로 불리는 대학병원들은 인증제 통과가 필수 지정조건이다. 요양병원들의 경우도 요양병원 항목에 해당하는 의무인증을 받아야 한다. 인증을 받지 못한다고 해서 개설이 안되는건 아니지만 수가(가격) 삭감 등의 불이익이 있다. 이외 일반 병원들은 자율인증제로 그런 불이익은 없으나 종합병원의 자율인증 참여율은 현재 66% 가량으로 그리 높지가 않다. 일반 병원 전체로 확대하면 20%를 넘는 정도로 더더욱 그러하다. 왜 그럴까? 일단 인증준비 과정 자체가 상당히 힘들다. 처음 준비하면 ‘맨땅에 헤딩’이란 말이 실감난다. 시스템을 갖춘 병원을 만드는 것이기에 구성원들 교육 및 규정 정비 등 신경써야 할 분야가 많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울산병원의 경우 1년여간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비용도 상당히 든다. 교육업체를 통한 모의연습부터 시설환경 개선 등 적지 않은 금액이 필요하다. 더해서 인증을 받는 것은 현재 수익과 직접적이기보다는 간접적으로 연결된다. 병원은 의료질 평가등급에 따라 국가로부터 받는 지원금액이 달라지는데, 인증을 받으면 의료질 평가에서 점수가 플러스 되지만 반드시 등급이 한단계 올라가는 건 아니다. 그 외 여러 기준들이 있기 때문이다. 인증제를 통과한 병원이기에 환자 안전과 의료질이 높다는 것을 홍보 포인트로 삼을 수도 있지만 역시 간접적이다. 이에 최근 인증원에서 직접적인 인센티브를 고민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바 있으며, 병원이 지원할 수 있는 여러정책 사업에 인증여부가 필수로 들어가는 방안들이 현재 시행 중이다. 이런 정부차원의 노력들이 앞으로 우리나라 의료기관 전체의 인증비율을 서서히 높일거라 생각하지만, 아직은 인증획득의 허들이 획득 후의 보상에 비해 높다고 여겨져 참여가 적은 듯 하다.
인증통과 전후로 드는 개인적인 생각은, 힘은 들었지만 병원 전체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매우 좋은 이벤트였다는 것이다. 경영자 입장에선 발전적인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정말 좋은 기간이기도 했다. 인증제도의 지속적인 확대와 발전을 바란다.
임성현 울산병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