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분옥 시조시인의 시조 美學과 절제](72)이고 진 저 늙은이-정철(1536~1594)
나이듦에 대한 연민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니 돌인들 무거우랴
늙기도 설워라 커든 짐을 조차 지실까 <경민편(警民編)>
누구나 태어난 첫날부터 나이를 먹는다. 또 누구나 나이 먹기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나이 든다는 것이 그렇게 두려운 것만도 아니다. 젊은 날 좌충우돌 넘어지며 아팠던 시절을 살아봤으니, 뜨거운 피의 출렁거린 시절을 살아봤으니 더 이상 무슨 미련이랄게 있겠는가. 나이 먹음을 굳이 두려워할 것만도 아니다. 나이 들어서 더 충만하고 풍요로운 삶이 또 있는 것이다.
나이테는 나무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에서 나이가 드는 것은 나무에 나이테가 생기는 것과 같은 것이다.
다만 나무를 잘랐을 때 나무의 나이테를 직접 볼 수 있지만 사람은 한 생애를 다 살고 난 뒤에 남은 이들이 그 사람의 삶을 보고 나이테를 짐작한다. 인생은 청춘이었다가 반드시 노년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체의 숙명이니, 혼자만 나이 먹는게 아닌데 뭘 그리 억울할 게 있겠는가. 그냥 세월의 배를 타고 신나게 노를 저어갈 뿐이다.
나이라는 그릇 속에 인생을 담아 가는 것이다. 기쁨과 아픔, 수고와 열정 그것으로 인생은 꽃이 필 수가 있다.
나이 들수록 멋있는 사람도 있다. 500년 먹은 노거수의 자태처럼 위풍당당한 노인도 있다. 반드시 신체의 나이로만 헤아리기 보다는 정신적인 풍모를 지닐 수도 있는 것이다.
연륜에 지혜를 쌓은 인생을 높은 나무 올려다 보듯이, 올려다 보이는 인생이 있다. 그렇게 살다간 많은 위인이 몇 백년 또는 천년을 역사 속에 살아있다.
나이 먹는 건 가보지 못한 길을 가는 것이다. 세상이 다 하는 그날까지 언제나 인생은 청춘이다. 어느 누가 청춘의 나이를 못 박아 놓았는가. 청춘을 자신만의 잣대로 잰다고 누가 탓할 것인가.
30대 노인이 있는가 하면, 90대 청춘도 있다. 인생 경영은 자신만의 책임경영이다.
시조와 가사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송강(松江) 정철(鄭澈) ‘훈민가(訓民歌)’ 열여섯 수의 맨 마지막 수다. ‘늙기도 설워라 커든 짐을 조차 지실까’ 필자는 자신이 나이 먹는 건 그리 섧지 않으나 자식들 나이 먹는게 때론 안타까울 때가 있다.
한분옥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