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언제까지 부러워만 할 텐가
어린 시절 추억의 성남동 거리는 언제나 북적이던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행여 가던 길을 잃지 않을지 어머니 손 꼭 붙잡고 걷기 바빴다. 한때 울산 최대의 상점가이던 주리원백화점과 태화극장, 울산극장 앞에는 데이트를 즐기려는 청춘남녀의 발길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원도심은 주말 나들이객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며 아케이드를 중심으로 상권이 발달해 일본 오사카 거리 못지않은 울산 대표 중심지로의 명성을 이어왔다.
그랬던 원도심이 최근 10여 년 사이 사람 발길이 줄며 끝없는 침체의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한산한 거리 풍경 속 상점 곳곳에 붙은 커다란 ‘임대’ 두 글자만이 을씨년스러움을 전해준다. 중구 상권의 심장부와도 같았던 원도심이 왜 이리도 깊고 어두운 불황의 터널로 빠져들었는지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다른 대도시의 원도심은 어떨까.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포장마차거리와 익선동 고기 골목. 평일 이른 저녁 시간임에도 식당과 포장마차 불빛 사이로 가게 내부를 가득 메운 젊은이들의 웃음소리와 거리 곳곳을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 속에서 활기가 절로 느껴졌다. ‘종로3가 야장거리’라고도 불리는 포차거리는 인근 회사원들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들까지 찾는 이색상권으로 최근 크게 주목받고 있다. 종로포장마차거리의 성공은 상인들이 자체적으로 협의회를 구성, 위생과 메뉴, 가격, 영업시간 등을 스스로 결정하고 공동관리를 통해 지금의 활기를 만들어 낸 동력이라고 한다. 울산과 가까운 부산의 영도구 항구를 중심으로 형성된 역시 포차거리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덕분에 현지 주민들보다 입소문을 타고 전국에서 몰려온 청춘남녀들과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것은 물론 인근 호텔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는데 적지 않은 일조를 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포장마차촌 덕분에 주변 상권이 함께 살아난 셈이다.
나이 많은, 소위 ‘꼰대’들의 전유물이자 서민들의 술집 정도로 여겨졌던 포장마차가 어떻게 오래된 구도심의 상권을 되살리는 효자 노릇까지 하게 된 걸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지난 2018년부터 불어닥친 ‘뉴트로’(New-tro)의 열풍이 젊은 세대를 끌어들인 동력이 되지 않았나 하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더해 창의적인 젊은 창업자들이 유입되면서 콘텐츠의 다변화를 이뤄내며 포장마차가 단순히 먹고 마시는 공간에서 문화와 경험을 선물하는 복합공간으로 탈바꿈한 셈이다. 또한 종로구와 영도구 등 행정기관의 적극적인 정책지원과 규제 완화도 변화의 촉매제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부산 영도구와 서울 종로구도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각각 34.1%, 21.8%를 차지, 20.9% 수준인 우리 울산 중구 못지않게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소위 ‘나이 든’ 도시이기에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동안 우리 중구는 원도심 상권활성화를 위해 중앙정부와 광역단체의 보조금을 필두로 많은 재원을 쏟아부었고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도심 상권은 오히려 더욱 깊은 침체의 늪으로 빠져드는 모양새다. 결국 문제는 보조금이라는 외부 자원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내부적인 변화의 움직임이 함께 진행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우리 중구만이 가진 매력, 특색, 그리고 경쟁력이 무엇인지 행정기관과 의회, 그리고 상인과 주민들이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일회성 축제나 행사가 아닌 지속 가능한 변화의 틀을 모색하고 20~30대 젊은 창업자들이 과감히 도전할 수 있는 터를 만들어줘야 한다.
서울 종로구와 부산 영도구 성공 사례의 공통점은 단기간에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상인들이 중심이 되어 자생적 노력을 펼치고 행정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정책을 개선하고 규제를 완화하는 노력이 함께 맞물리며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시행착오도 겪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더 이상 종로와 영도의 ‘활기찬 밤’을 부러워만 할 것이 아니라 임대료를 낮춰 젊은 창업자를 끌어모으고 원도심만의 콘텐츠를 개발, 이를 상업화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 더 이상 재미도, 관심도 없는 시계탑 모형 기차에만 수천만원의 수리 비용을 들일 때가 아니란 소리다.
박경흠 울산중구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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