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오태환 ‘안다미로 듣는 비는’
처마맡에 널어 말린 동지(冬至)께 무청처럼 간조롱히 뿌리는 비는
한 치 두 치 나비 재며 한 냥쭝 두 냥쭝 저울에 달며 는실난실 날리는 비는
일껏 발품이나 팔며 그늘마다 구름 기슭 볕뉘처럼 움트는 비는
전당포(典當鋪)도 못 가본 백통(白銅) 비녀 때깔로 새들새들 저무는 비는
꺼병아 꺼병아 애꾸눈서껀 엿장수서껀 칠삭둥이서껀
안다미로 눈칫밥만 멕이다가 나무거울로 낯짝 가리고 내리는 비는
안다미로 비를 바랐던 타버린 지난 봄
이슬비, 보슬비, 가랑비, 작달비, 주룩비, 달구비, 장대비, 장맛비, 채찍비, 도둑비, 여우비, 실비, 는개 등 우리말로 표현된 비의 종류는 많기도 한데, 안다미로 듣는 비는 어떤 비일까?
안다미로는 넘치도록 많게, 라는 뜻이니 얼핏 주룩비처럼 많이 쏟아지는 비인 것 같다.
하지만 시를 잘 들여다보면 좀 다르다. 비는 잘 마른 무청처럼 가늘고 가지런히 내리고, 비의 걸음과 무게를 재도 될 정도로 가볍게 흩날리며 내리고, 구름 사이 겨우 비치는 볕처럼 가까스로 내리고, 그러다 값싼 백통 비녀의 흐릿한 빛처럼 시들시들 그치고 만다.
꺼병이는 꿩의 새끼니 꺼병이가 나오는 봄, 높새바람에 잔디 끝이 마른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가뭄 사이 봄비는 감질나는 편이라 애꾸눈, 엿장수, 칠삭둥이처럼 서러운 사람들에게 넉넉한 건 눈칫밥밖에 없다.
그러니 비도 멋쩍고 부끄러워 낯을 가리고 내린다. 안다미로 듣는 비는 풍요롭게 내리는 비가 아니라 풍요롭길 바라는 비다. 순우리말의 아름다움이 안다미로 넘쳐나지만, 그 이면의 시름도 안다미로 도드라지는 시이다.
산불로 한줄기 비가 아쉬웠던 지난봄이 생각난다.
송은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