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1장 만남 / 보부상 서신 1호(4)
늑대들 중에서도 유난히 털에 윤기가 있고 잘 발달된 몸을 가진 우두머리인 듯한 놈이 무리의 싸움을 지휘하고 있었다. 청년은 늑대 무리들을 상대하면서도 제일 약해보이는 놈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었다. 무사가 여러 명의 적들에게 협공을 당할 때 쓰는 지극히 일반적인 방법을 지금 청년이 쓰고 있는 것이다.
치열한 싸움은 꽤 오래도록 격렬하게 전개되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늑대들이 한 마리씩 땅바닥에 누워 움직이지 않았다. 동료가 죽자 늑대들은 더욱 살기를 띠며 으르렁댔다.
“크으릉, 크으릉.”
동료들의 죽음에 대한 복수라도 하는 듯 늑대들은 더욱 사납게 울부짖으며 두 사람을 공격했다. 그러나 청년은 여전히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인간과 짐승의 지루한 싸움은 마침내 승패가 결정되었다. 아홉 마리 중에서 다섯 마리가 죽고 네 마리만 남자 늑대들은 슬금슬금 뒷걸음치더니, 슬픈 울음을 울컥울컥 산자락에 토해 놓고 도망가 버렸다. 늑대와 싸우던 젊은 사내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혼절한 여인을 들쳐 업고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흥미롭게 싸움을 관전하느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왠지 그 건장한 청년이 휘두르던 막대기의 궤적에 신경이 쓰여서 다시 머릿속으로 그려본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 청년이 마구잡이로 빠르게 휘두르던 막대기의 궤적이 자신의 검법과 정확히 일치하였던 것이다.
선조재위 22년인 1589년 어느 봄이었다. 그는 주인의 명으로 조선의 지형과 군사편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러 왔다가 임무를 마치고, 염포에 설치된 왜관을 통해 본토로 귀국하기 위해 길을 가고 있었다. 경주에서 모화를 거쳐서 중산마을을 지나던 중에, 피투성이가 된 채 양반 자제로 보이는 아이들에게 계속해서 구타를 당하는 거지소년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 아이는 하도 많이 맞아서 성한 곳이라고는 없는 상태인데도 눈빛만큼은 전혀 굴복당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자신과 비슷한 덩치의, 또래로 보이는 아이를 보호하고자 혼자서 몰매를 맞으며 견디고 있었다. 자신이 마치 끌어안고 있는 아이의 보호자라도 되는 양 매를 대신하여 맞자, 때리던 아이들은 더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무자비하게 폭력을 행사했다. 때리던 아이들이 지쳐서 발길질을 그만둘 때까지 죽을힘을 다해서 끝까지 보호하는 모습이 몹시 인상적이었다. 아이들이 물러가자 자신은 피투성이가 되어있는 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보호한 아이의 상태가 염려가 되는지 몇 번이나 확인하듯이 물었었다.
글 : 지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