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산업수도에서 AI 수도로]에너지·제조역량 겸비 ‘준비된 AI 전초기지’

2025-07-03     이형중
국내는 물론 전세계 주요 도시가 인공지능(AI) 아젠다 선점에 사활을 걸고 있다. AI 기술은 일반 제조 분야와 같은 전통적인 산업은 물론 일상 생활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그야말로 AI 전성시대다. 데이터 주권과 디지털 통상 이슈에 대한 전략적 대응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새 정부도 최우선 국정과제로 AI 3대 강국 진입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울산에서도 최근 본보가 주최한 ‘2025 울산혁신콘퍼런스’를 계기로 행정 및 산업계 전반에서 AI 활용에 대한 논의와 실천이 빠르게 확산되는 모습이다. 이에 본보는 UNIST, 울산테크노파크, 울산연구원, 지역 기업 CAIO 등을 대상으로 울산이 산업수도에서 ‘미래형 AI 수도’로 도약할 수 있는 방안을 들어본다.

디지털 주권이란 ‘한 국가가 자국 내에서 데이터를 생성·저장·처리·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이를 통해 미래 산업과 국가 경쟁력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는 권한’을 의미한다. 디지털 주권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정보 보호 또는 기술적으로 자립하는 차원을 넘어, 국가 경제 전체의 주도권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데이터와 인공지능(AI)은 미래 산업의 뼈대가 되며, 이를 타국에 의존할 경우 기술 유출, 사이버 안보, 산업 전략 주도권 상실 등 복합적인 리스크에 직면할 수 있다.

유럽연합(EU)은 미국 기업에 대한 데이터 종속을 우려해 정보보호법(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을 제정하였다.

또한, 인공지능 시스템의 안전성 확보와 기본권 보호를 위한 AI법을 추진했고, 프랑스와 독일은 자국 내 AI 개발 생태계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AI 시대의 경쟁은 단순히 알고리즘이나 기술개발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제는 데이터를 어떻게 통제하고, 어디에서 AI를 학습·운영할지를 결정하며, 그에 필요한 전력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지가 경쟁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술 경쟁에서 인프라 경쟁으로, 소프트웨어 중심에서 에너지 기반 경쟁으로 무게중심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연산 능력을 확보하려면 컴퓨터 인프라 말고도 대규모 전력을 끌어올 수 있는 전력망과 청정에너지가 필수다. 데이터센터 하나가 사용하는 전력이 웬만한 산업단지 수준이라는 점에서, 에너지 주권 확보는 곧 디지털 주권 확보이다. 한마디로 디지털 주권을 확보하려면 기술·전력·입지·산업 정책이 통합적으로 작동해야만 한다.

독일과 프랑스는 ‘주권형 AI(Sovereign AI)’ 전략을 통해 공공 및 산업용 AI 모델을 자국 내에서 개발·운영하며, 핵심 기술과 데이터를 외부에 의존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역시 백악관 산하에 AI 책임자와 기술안보 보좌관을 두어, 대통령실에 직접 보고하는 체계를 갖추었다. 한국도 대통령실에 AI비서관 직제를 신설하며 이러한 추세에 대응하고 있다.

AI는 수많은 계산을 필요로 하는 기술이다. GPT-4 같은 초거대 AI를 훈련시키려면 수십만 개의 컴퓨터 칩을 몇 달 동안 쉬지 않고 돌려야 한다.

이때 들어가는 전기 100●●는 20만 가구가 쓸 만한 양이다. 결국 AI의 성능은 알고리즘보다 청정하고 안정적인 전력 인프라에 의해 결정된다. 이런 이유로 마이크로소프트는 핵융합 발전 스타트업과 협력해 데이터센터 직결형 전력 공급망을 준비하고 있으며, 아마존은 원전 인근 부지에 AI센터를 구축해 직접 전력을 조달하고 있다. 구글과 메타는 자체적으로 재생에너지 발전단지를 운영하며 청정전력 자립도를 높여가고 있다. 아일랜드에서는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급증해 2023년 기준 전체 계량 전력의 21%를 차지했고, 2024년에는 22%로 더 늘어났다. 이로 인해 정부는 신규 데이터센터 허가를 일부 제한하고, 전력망 증설과 청정에너지 공급 확대를 병행해야 했다. 실제로 더블린 지역에서는 송전 인프라 용량 부족으로 신규 센터 연결이 지연되거나 보류되는 사례도 발생했다.

한국의 수도권은 송전망 포화와 지역 수용성의 한계에 직면해 있다. 해마다 반복되는 데이터센터 입지 갈등은 더 이상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다. 산업 지도를 재편해야 할 시점이다. 대한민국 AI 산업의 토대를 지탱할 새로운 전략 거점이 필요하다. 울산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다층적 청정에너지 실증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으며, LNG 열병합, 수소, 해상풍력,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을 기반으로, 향후 소형모듈원자로(SMR)까지 아우를 수 있는 청정전력 체계를 구축할 준비를 하고 있다.

게다가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으로 지정됨으로써, 전력 직접거래, 요금제 자율화, 계통 영향평가 면제 등 제도적 유연성도 확보하게 된다.

울산은 SK와 AWS가 협력한 100GW 규모의 AI 특화 데이터센터 유치에 성공했고, 장기적으로 1GW급으로 확장될 예정이다. 울산의 강점은 글로벌 제조기업, 인재 양성 체계, 공공기관의 실행력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데 있다. AI, 에너지, 제조 역량이 융합된 ‘살아 있는 테스트베드 도시’라는 점에서 울산의 차별성이 빛난다. 산업화 60년의 역사를 품은 울산은 이제 대한민국 산업 경쟁력을 다시 설계할 AI 시대의 전초기지로 도약할 준비를 마쳤다. 울산형 AI-에너지 융합특구 전략은 단지 지역 발전이 아닌, 디지털 주권과 산업 대전환을 이끄는 국가 전략의 핵심이어야 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정부의 결단과 범국가적 집중이다. 울산은 준비되었다. 이제 응답할 차례는 국가다.

조영신 울산테크노파크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