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민의 불역유행(不易流行)(25)]세계 시민교육은 왜 필요한가?
며칠 전 유튜브에서 끔찍한 동영상을 봤다. 60여년 전 있었던 구소련의 수소폭탄 실험 광경이었는데 “만약 지금 일어난다면?”하는 상상으로 확장되는 순간 모골이 송연했다. 냉전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61년 10월 말 소련은 북극해 노바야제믈랴 제도에서 ‘차르 봄바(황제의 폭탄)’라는 별명을 가진 수소폭탄을 지상 4.2㎞ 상공에서 폭발시켰다.
당초 100Mt 규모로 계획됐지만 작전에 참여할 폭격기 조종사의 안전 측면 등을 고려해 50mt급으로 축소해 대형 낙하산에 매단 채 투하했는데 폭발 당시 버섯구름의 폭은 40㎞, 높이는 에베레스트산의 7배에 달하는 67㎞에 이르렀다. 높은 하늘에서 터진 폭발이었음에도 진도 5.0의 지진이 발생했고 1000㎞까지 섬광이 보였으며 그 먼 거리에 있던 핀란드 농가들의 유리창들이 박살 날 정도였다고 한다.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에 떨어진 ‘Little Boy(꼬마)’로 불린 고농축 우라늄 원자탄과 8월9일 나가사키를 잿더미로 만들어버린 플루토늄 원자탄인 ‘Fat Man(뚱보)’과 비교하면 그 파괴력이 3000배가 넘는다고 한다. 오싹하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가공할만한 위력을 목도한 미국은 더 이상 핵 경쟁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해 러시아와 서둘러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그 결과, 지하를 제외하고 모든 핵실험을 금지하자는 요지의 ‘부분핵실험금지조약(PTBT)’을 발효시켰다. 그 후 반세기 동안 국제사회는 핵무기 보유국을 지구상에 5개국으로만 한정하자는 바람이 담긴 ‘핵확산금지조약(NPT)’, 지하를 포함한 모든 핵실험 금지를 천명한 ‘전면핵실험금지조약(CTBT)’, 모든 핵무기를 폐기하고 더 이상의 핵무기 생산을 금지시키자는 ‘핵무기금지조약(PNWT)’을 순차적으로 만들어냈다.
이렇듯 인류의 사활을 건 절대절명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제조약상 핵무기 보유를 인정받은 안보리 상임이사국들과 국제규범을 위반하면서 핵무기를 개발 보유 중인 북한,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등 9개국은 핵폭탄을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다. 오히려 안보 균형 유지와 핵무기의 안전성 제고를 핑계로 핵무기의 현대화와 고도화를 도모하고 있다. 큰일이다.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는 핵무기를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고, 핵무기 개발을 저울질하며 위협해 온 이란의 포르도, 이스파한, 나탄즈 등 3대 핵시설은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격으로 철저하게 파괴됐다.
앞으로 북한이 지상 또는 수중에서 7번째 핵실험을 감행할 수 있고, 이를 미리 감지한 미국의 공격 타깃이 될 수도 있다. 만약 북한이 지하가 아닌 곳에서 핵실험을 감행한다면 국제사회에 미치는 나쁜 영향은 지금과는 다른 차원일 터인데 비토권을 가진 러시아가 안보리결의 채택을 방해할 것이 분명해 보여 우리로서는 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더 나아가 이란에서의 국지적 타격의 성과에 고무된 미국이 우리와의 확장억지 정책에 근거해 예방적 또는 선제적으로 북한 핵시설을 원점타격한다고 하면, 한반도는 진정 어찌 될 것인가?
인류 역사상 수 많은 전쟁영웅들이 언급했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Preparation for war is the surest guaranty for peace)”는 명언이고 맞는 말이다.
그런데 “오직 죽은 자만이 전쟁의 끝을 본다”는 가르침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시작보다 끝내기 어려운 것이 전쟁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지난 학기 울산대학교에서 ‘국제학의 이해’라는 과목을 강의하면서 의외로 많은 학생들이 북한핵 문제 등 핵비확산 체제(NPT)에 대해 잘 알지 못해 놀랐다.
파리 기후변화협정 같은 지구환경문제와 개발협력 같은 국제 현안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갖고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3050(국민소득 3만불과 5000만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전 세계 7개국)’클럽과 G7+ 국가로 당당하게 자리매김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럴 자격과 의무를 함께 가지고 있다.
나와 민족만큼이나 세계와 인류의 행복을 생각해야 하고 관심과 사랑의 범위를 가족을 넘어, 우리나라, 아시아, 전 세계로 넓혀 나가야한다.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이해해야 하고 사회적 정의를 위해 열정적으로 헌신하면서 보다 공평하고 지속 가능한 세계가 될 수 있도록 세상 사람들과 함께 일해야 한다.
이러한 사람을 세계시민이라 부르고, 세계시민들이 주류가 될 때 전쟁 없는 지구에서 지속 가능한 미래를 실현시킬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얼마 전 울산과학대학교 소재 국제개발협력센터에서 시행한 국제개발협력(ODA) 관련 시민교육은 시의적절했고 유익했다.
유엔에서 중점 추진 중인 17개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중 첫 번째인 빈곤퇴치를 위한 국제사회의 공동 노력 현황, 도전요인과 대응방안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재건을 목표로 한 마샬플랜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서유럽내 공산주의확산 방지와 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 구축을 이룬 미국이 트럼프 2기에 접어들면서 해외원조 프로그램을 전면중단하고 국제개발처(USAID)를 폐지하려는 수순을 밟고있어 안타깝다.
국제원조는 국제안보와 질서유지를 위해 제공하는 글로벌 공공재인데 국제사회의 으뜸 모범국가였던 미국이 패권국가로서의 중요한 의무를 저버리면 결국 새로운 패권 도전국가가 그 공백을 메우려고 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세계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 20세기 킨들버거 박사와 기원전 5세기 투키디데스는 이러한 위험스런 ‘함정(Trap)’에 빠지지 말 것을 설파했다. 세계의 산업 수도에 살고 있는 울산 시민 한사람 한사람이 세계 곳곳에 도사린 함정을 찾아 메우는 세계시민이 됐으면 한다.
박철민 울산대 교수 전 울산시 국제관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