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화 산책]바위에 눌러쓴 기호, 붓으로 살아난 염원

2025-07-07     차형석 기자

암각화는 선사시대 인류의 삶과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유산으로 문자 이전 시대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지식·믿음을 기록하고 후대에 전달하기 위한 일종의 시각적 언어라고 할 수 있으며 암벽에 새겨진 구상적·추상적 기호와 상징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이렇듯 암각화에는 삶의 애환·주술적 염원·생존과 번성, 그리고 초자연적인 힘에 대한 염원이 깃들어 있다. 울산 반구천으로 따라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암각화에는 다양한 동물·사냥 장면·어로 도구 등의 형상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는데, 이는 단순히 실제 생활을 묘사한 것을 넘어선 깊은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미르체아 엘리아데(Mircea Eliade, 1907~1986)는 ‘종교사 개론’에서 “나무 그 자체를 숭배하지는 않는다. 나무를 통해 드러내는 것, 다시 말해 나무가 함축하고 의미하는 것 때문에 숭배한다. 나무가 신앙의 대상물이 되는 것은 나무가 가진 힘과 나무 자체를 넘어서 표현하는 것 때문이다. 나무가 가지는 신성한 힘은 나무는 수직으로 자라고 잎이 피고 져서 수없이 죽고 부활하기 때문이다. 나무가 신성한 힘을 가진 것은 죽음이라는 생물의 질서를 반드시 따르지 않는, 어떤 원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나무의 원형은 생명, 부활을 의미한다. 이처럼 사물에는 상징을 담아내고 있다. 울산 반구천 암각화에는 선사시대 문화와 예술의 정수로서, 당대 인류의 사상·신앙·생활 방식을 함축적으로 담아낸 상징과 기호의 보고(寶庫)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미학적 특징들은 현대인들에게도 깊은 감동과 함께 과거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상징의 역사는 모든 대상들이 상징의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대상이 자연물이건 추상적인 기하학적인 형상이건 모든 것은 상징이 될 수 있다. 상징은 숨겨져 있지 않다. 단지 우리가 읽지 못할 뿐이다. 상징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징의 자유, 즉 사회적인 질서에 속박되기 이전에 선입견이 없는 어린이의 자유와 같은 그런 자연스러움을 부활시켜야만 한다.

암각화의 특징은 첫째, 선과 면의 활용. 둘째, 과감한 생략과 강조. 이는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보다는 그 대상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나 상징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셋째, 조형미와 역동성. 이는 당시 사람들이 자연과 생명에 대한 깊은 관찰력과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선사인들이 돌칼로 바위에 형상을 새기듯 작가는 화선지에 부드러운 모필을 사용해 한 점 한 점이 더해져 형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간결하면서도 힘 있는 기호적 표현으로 최소한의 선과 면, 과감한 생략과 강조를 통해 대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며, 당시 사람들의 시각적 사고 방식을 화면에 옮겨내고 있다.

작가는 “붓이라는 도구로 바위에 새기듯이 그렸다. 화선지에 한 점 한 점 파는 심정으로 선사인의 정신을 조금이나마 느껴보기 위해 사실에 가까울 정도로 표현하려고 했다.” 이같이 작품 <염원>에는 반구천의 암각화의 세계유산 등재를 염원하는 의미와 함께 이곳을 터전으로 살았던 선사인들의 삶의 모습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화면에 담아내고 있다. 현대미술에서 암각화는 인류예술의 근원적 형태로서 조형적 본질·정신적 깊이·문화적 다양성, 그리고 기록과 소통의 원형이라는 측면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새로운 예술적 실험에 대한 가능성을 던져주고 있다.

울산 반구천 암각화는 올해 7월 중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확실시되면서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보여준다. 반구천 암각화에는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거와의 소통을 보여준다. 반구천암각화는 단순한 고고학적 유물을 넘어 인류의 과거·현재·미래를 잇는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하고 있으며, 다양한 현대적 의미와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화가에게 반구천암각화는 무한한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자 예술적 탐구의 대상이 된다. 형식의 단순함과 상징과 서사·자연과 인간의 교감·새로운 시각적 언어와 창작기법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인류 최초 예술가는 돌에 선과 색을 사용해 바위 면에 그림을 그렸다. 미술평론가 제리 살츠(Jerry Saltz, 1951~)는 “예술은 열려 있으며 작품에 대한 해석과 작품 그 자체의 틈 사이에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큐레이터 얀 후트는 “좋은 작품은 답을 주지 않는다. 질문을 던진다.”라고 했다. 생각을 재료 안에 담아라. 재료는 작가에게 선택의 문제다. 예술 작품은 설명에 의존할 수 없다. 작품 안에 의미가 담겨 있어야 하고, 작품은 작가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이 생각하게 만들어 줘야 한다. 21세기 동시대 미술에서 작품은 그 자체로 완결되지 않는다. 제작자가 만든 뒤에 감상자가 감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아티스트는 감상자와 같은 위치에 있다.

글=김찬호 미술평론가·그림=이재영 문인화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