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금 칼럼]변화할 것인가 사라질 것인가
계엄의 혼란을 딛고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아직 새 정부의 정체성이 확실히 드러나지 않았고, 역량도 분명히 보여준 것이 없다. 이에 비해 대통령의 지지율은 생각보다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워낙 인기가 없었던 전 정권의 기저효과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무엇을 해도 이전보다 나을 것이라는 막연함 기대감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지지율 상승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무런 존재감이 없는 야당이다.
지난 선거에서 유권자의 41%는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했다. 황당한 계엄을 생각하면 낮지 않은 지지율이다. 그런데 최근 야당 지지율은 20%대까지 곤두박질 쳤다. 선거에서 지지했던 유권자의 절반 정도가 떠난 것이다. 지지율이 반토막 나는 경우, 상식을 가진 조직이라면 극도의 위기의식을 가지고 그야말로 뼈를 깎는 자기혁신의 길로 들어가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매우 여유로워 보인다. 마치 당연한 듯이 담담하게 야당의 길을 걷는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야당의 모습도 아니다. 치열한 투쟁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거나, 지지세력과의 연대를 통해 연합을 형성(coalition building)하는 활동도 없다. 비정상적인 비대위 지도부가 되풀이되고, 세상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여전히 내부 파벌 싸움과 개인적 이해관계만을 생각하며 유유자적 세월을 보내고 있다.
지지율이 낮으니 여당과 대통령은 야당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겉으로는 대화와 협치를 거론하지만 실제로는 야당 무시 그 자체다. 증인과 참고인 한 명도 없이 청문회가 진행되고, 의혹이 전혀 규명되지 않아도 총리 임명을 강행한다. 전액 삭감했던 대통령실 특활비를 정권 획득 후에 다시 요구하는 민주당의 후안무치에도 대항할 뾰쪽한 수가 없다. 국회의석도 절대 열세인데다가 지지도도 낮으니 야당이 무엇을 해도 국민들은 큰 관심이 없다.
사정이 이러니 야당에는 인재가 모여들지 않는다. 선거구가 제일 많고 지역색이 약한 수도권에서 국민의힘 후보로는 당선될 가능성이 극히 낮아졌다. 몇 번의 선거를 치르면서 국민의힘은 수도권에서 거의 멸종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러니 정치적 야망이 있는 인재들은 대부분 민주당을 향하는 것이 현실이다. 과거 진보좌파 정당에는 주로 운동권 중심의 인물들이 포진해 있어서, 인력 면에서는 보수우파가 우월하다고 생각된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옛날 이야기다. 인적 역량에서도 양적·질적으로 민주당이 나으면 나았지 결코 밀리지 않는다. 국민의힘이 최근 주도적으로 국민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정책을 제안한 것이 있었는지 기억이 별로 없다.
지지율이 낮으니 인재가 모여들지 않고, 그래서 정책역량이 떨어지고 이는 다시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시작된 지는 이미 오래 전이다. 이런 정당을 지지했던 41%의 유권자들도 이제 뿔뿔이 흩어지고 있다. 이들을 붙잡아 다시 설 수 있을까 아니면 이대로 폭삭 주저앉을까. 이는 전적으로 국민의힘의 선택에 달려 있다.
우선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획기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어정쩡한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다. 제일 먼저 인적 쇄신부터 나서야 한다. 이른바 ‘친윤’으로 호가호위하던 사람들은 모두 물러날 정도가 되어야 겨우 국민들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떠밀려 나가는 것보다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는 것이 더 좋다. 불출마 선언을 통해 젊고 역량 있는 인재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자기희생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인재들을 모아 국민들이 원하는 혁신적인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국민의힘은 그동안 ‘부자와 기업을 위한 정당’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어왔다. 대중정당이면서도 특정 계층을 대변하는 정당인 것처럼 비춰져 왔다. 보편적 가치와 공정이라는 시대적 흐름과는 상충되는 측면이 강했다. 포퓰리즘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소득계층과 세대를 아우르고 국민들을 통합시킬 수 있는 참신한 정책들을 개발하고 제시하면서 지지를 서서히 회복해 나가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만일 지금처럼 현실에 안주하면서 당이야 어떻게 되는 말든 자신의 재선만을 노리는 극히 이기적인 모습만 보여준다면, 그나마 20%만 남은 지지자들도 더 급속히 떠나갈 것이다. 과연 국민의힘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변화할 것인가 사라질 것인가(change or die).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