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워진 바다, 흔들리는 어장]바닷물 온도 매년 신기록…해양생태계 열병 앓는다
범세계적인 2030 탄소중립을 목표로 친환경 정책이 이어지고 있지만, 바다는 이미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후 처음으로 지난해 1.5℃ 상승을 넘었고, 한국 연안 해수온은 지구 평균의 두 배 속도로 상승하며, 해양생태계와 어업을 흔들고 있다.
본보는 지난 2~4일 거제·통영 일대에서 열린 ‘기후위기와 해양 수산 현장 탐방 전문연수’를 동행 취재했다. 이번 연수는 한국언론진흥재단 부산지사와 거제·통영시, 멍게수하식수협, 국립수산과학원, 한국수산자원공단 등이 함께 마련했다. 고수온으로 인한 해양 위기의 전망과 현장에서 발생한 피해 등을 2회에 걸쳐 짚어본다.
◇“바닷물도 이제 더워 못살겠다”
한국 주변 바다는 최근 57년간(1968~2023년) 표층수온이 약 1.58℃ 상승했다. 같은 기간 전 세계 평균 해수온 상승 폭(0.74℃)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
수온이 크게 오른 이유는 난류의 세력 강화와 좁고 얕은 해안 지형이 맞물려 열을 빠르게 흡수·저장하기 때문이다. 한반도 주변 해역은 연평균보다 2℃ 이상 높은 평년편차 현상이 잦아지며 단순한 온도 상승을 넘어 기후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연안의 연평균 표층수온은 18.74℃로, 1968년 관측 이래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직전 최고였던 2023년(18.09℃)보다도 0.65℃ 높아진 수치다. 특히 동해 18.84℃, 남해 20.26℃ 등 전국 주요 해역이 모두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올해 수온은 아직 지난해보단 낮은 수준이지만 역대 2위를 기록할 정도로 높은 수온을 보이고 있다. 이에 올해는 지난해(7월11일)보다 약 1주일 빠른 지난 3일 고수온 위기경보 ‘주의’ 단계가 발령됐다. 장마전선의 북상으로 올해 장마가 이례적으로 일찍 종료됐고, 연이어 시작된 폭염으로 빠른 수온 상승이 예측됐기 때문이다.
수온 상승은 해안선 ‘등온선’(等溫線)의 북상으로도 확인된다. 해수의 온도가 올라가는 속도를 나타내는 해양 기후 속도는 2010년대 10년당 20.9㎞에서 최근 10년간 49.5㎞로 두 배 이상 빨라졌다.
◇‘북상하는 어장’ 현실화
해양 기후 속도가 2배 이상 빨라져 수온 상승이 급격해지면서 어류의 분포가 바뀌고 있다. 한류성 어종은 점차 설 자리를 잃고, 따뜻한 물을 좋아하는 난류성 어종은 점점 북쪽으로 올라가는 바다의 대이동이 현실화하고 있다.
문제는 해양생물의 서식지 자체가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국립수산과학원은 어종 북상을 공식 발표했고, 어민들은 어장을 따라 북쪽으로 이동해야 하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수온이 올라가면서 바닷속 생태계도 변화하고 있다. 표층과 저층의 수온 차이가 커져 해수가 층층이 나뉘는 성층(成層) 현상이 뚜렷해지고, 수직 혼합이 약해져 산소·영양염류·탄소의 순환이 원활하지 않다.
이로 인해 플랑크톤이 크게 감소하고 있다. 동해 해역의 기초생산력(식물플랑크톤이 유기화합물을 생산하는 능력)은 최근 6년 평균 대비 지난해 무려 13% 줄었고, 중·대형 식물플랑크톤 분포 범위도 해마다 1.1%씩 축소되고 있다.
플랑크톤은 물고기 알이나 유생의 먹잇감이자 먹이망의 기초다. 감소가 지속되면 해양생태계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수온 상승은 어업에 곧장 직격탄이 된다. 지난해 수산재해 피해액은 1504억원으로 집계됐는데, 이 중 1430억원이 고수온으로 인한 피해였다. 과거에는 적조가 가장 큰 피해 요인이었지만, 이제는 고수온이 수산업을 가장 크게 위협하고 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해수온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역대급 고수온이던 지난해 울산 동구 일산해수욕장 부근에는 독성 해파리인 노무라입깃해파리떼가 해변을 점령했다. 노무라입깃해파리는 한 번에 1억개 이상의 알을 낳고, 수온이 높아지면 직경 1m, 무게 200㎏을 훌쩍 넘는다. 사람에게 치명적인 독성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촉수에 쏘이면 심한 통증과 발진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식중독을 유발하는 시구아테라 어독 플랑크톤의 서식 가능 일수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또 고수온은 바닷물의 표층과 저층 사이 수온 차이를 더 크게 만들어 해수 혼합이 약해지고 해무 발생 가능성도 높인다. 따뜻한 표층수와 상대적으로 차가운 냉수대가 만나면 수증기가 응결해 해무가 자주 발생한다. 실제 울산 동해안 등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 해무 발생 일수가 눈에 띄게 늘었다.
반대로 고수온으로 인해 냉수대 형성이 약화되거나 사라질 가능성도 있다. 차가운 수온에서 서식하는 오징어 어획량이 줄어 가격이 급등한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이미 뜨겁게 달궈진 바닷물이 쉽게 식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의 추세가 이어질 경우 2100년 동해 표층수온은 최대 5℃, 서해와 남해도 4℃ 가까이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 수온이 계속 상승할 경우, 김 양식 등 수산업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대표적 양식품종인 김의 성육 적정 수온 기간은 2100년께 100일 미만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현재는 150일 내외다.
전문가들은 앞으로의 고수온으로 인한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지금 당장 전 세계가 탄소중립을 실현하더라도 이미 온도가 올라간 바닷물의 온도를 낮추기 쉽지 않다는 의미다.
한인성 국립수산과학원 기후변화연구과장은 “탄소중립 등의 노력을 하더라도 2100년까지 해수온의 2~3℃ 정도 상승은 불가피할 것”이라며 “해수 온도 상승을 늦추기 위해 우리 모두의 관심이 필요한 때”라고 덧붙였다. 거제·통영시=오상민기자 sm5@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