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내의 초록지문(19)]톨맨 마운틴 주립공원에서
나는 지금 미국 동부에 있다. 뉴저지와 맨해튼을 오가며 생활 중이다. 연일 신기록을 갈아치우는 무더위와 시차 덕에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겁다. 다행히 지난밤 제법 굵은 비가 내렸다. 기온이 조금 떨어진 오늘 같은 날은 햇살만 피한다면 숲의 소리에 집중하기에 적당하다. 자연스레 목적지를 톨맨 마운틴 주립공원(Tallman Mountain State Park)으로 정했다.
허드슨강을 따라 난 산책로에 습기 품은 바람이 가득하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단풍나무며 백합나무며 참나무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녹색 향이 콧속을 채운다. 이곳에서 일상의 소요는 잠시 자취를 감춘다.
뉴욕과 뉴저지의 경계에 있는 톨맨 마운틴 주립공원은 한때 채석장이었다. 1928년 자연환경 보전을 위해 공원으로 조성했으며, 부지 내에 수영장과 피크닉장, 운동장 등 다양한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인근 시민들이 즐겨 찾는 이곳의 진정한 가치는 비옥한 환경이다. 허드슨강이 옮겨온 충적토와 피어몬트 습지의 유기물이 만든 기름진 토양 위에서 다양한 생명체가 자란다. 나무는 그늘을 만들고 그 아래에서 각자의 리듬으로 살아가는 생명들이 있다. 여기서는 인간도 그저 생태계의 일부인 듯하다.
왜 공원일까? 공원은 생명과 계절이 교차하면서 여러 층위의 자연이 인간과 관계를 맺는 장소다. 자연은 배경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감각을 매 순간 일깨우는 장치다. 우리에게 삶의 속도를 늦추고 자신을 돌아보도록 가르친다.
습기 품은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조심스레 고개를 내민다. 숲 냄새를 맡으며 걷는 길, 나보다 몇 발짝 앞서 청설모가 뛰어간다.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들 너머에선 사슴 가족이 발자국을 살핀다. 붉은가슴울새, 방울새, 왜가리, 청둥오리의 노래가 하모니를 이룬다.
기증자의 이름이 새겨진 벤치에 앉아 허드슨강을 바라본다. 그의 생이, 공원이 지나온 시간이 겹겹이 쌓인다. 나는 50일의 여행자이고 일상에서 잠시 떨어져 있다. 덕분에 방해받지 않고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 거대한 자연의 수레바퀴 앞에서 나는 그저 작고 미세한 톱니 하나일 뿐. 겸허함이 저절로 마음에 깃든다.
송시내 나무의사·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