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운동화가 예술이 되는 시간

2025-07-09     경상일보

금요일 밤 9시. 아쉽게 하루를 마무리해야 하는 평일 밤과 달리, 금요일 밤은 주말의 문턱을 빼꼼히 열어보는 설레는 시간이다. 거실 소파에 앉아 리모컨을 손에 든 채 프로그램을 둘러보다 문득 떠오른 우리 딸 운동화. 하얀색이 예쁘다며 한눈에 고른 운동화가 딸과 함께 다니면서 어느새 회색빛으로 변해 있었다. 오늘도 그저 못 본 척 지나칠까 잠시 망설이다가, 새 운동화를 신고 환하게 웃던 딸아이 표정이 그려져서 운동화 끈을 하나씩 풀어냈다.

세제 물에 운동화를 담그자 나머지 신발들도 눈에 들어왔다. ‘아이참~’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한꺼번에 하자’며 나를 다독였다. 밥 짓기 전에 쌀이 불기를 기다리는 사소한 인내심으로 30분 동안 운동화를 불린 뒤, 장갑을 끼고 솔질을 시작했다. 운동화에 강력한 세제를 뿌려두기만 해도 금세 새하얘질 줄 알았건만, 막상 솔질을 해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내 손목에 단단히 힘을 주고 쓱쓱, 싹싹 몇 번을 문질러야 했다. 이제 됐다 싶어 헹궈보니 아직도 남은 얼룩들이 보였다. 짜증섞인 마음으로 더 힘을 줬다.

처음에는 남은 얼룩이 못마땅했지만, ‘잘 보여야 제대로 씻을 수 있지’ 하며 뾰족한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그러자 ‘새하얗게 만들겠다’던 욕심은 사라지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며 힘을 뺐다. 젖은 운동화를 건조대에 널어두고 바라보니, 이 작은 일상에 오갔던 내 마음들이 고스란히 보이는 듯해 웃음이 났다.

귀찮음을 넘어서 한 번 행동하면 어느새 더 많은 일을 하게 된다. 힘들이지 않고 모든 일이 저절로 되길 바라는 내 얄팍한 욕심도 보인다. 완벽을 향한 기대에서 현실과 타협하며 자신을 다독이는 나도 있고,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그래도 잘했다’라며 스스로에게 미소 짓는 나 자신도 운동화 한 켤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무지갯빛 감정을 느끼며 살짝 멋쩍어진 순간, “고독을 견디고 외로움과 싸워 이기는 것이 가능하다면, 절반은 해결된 셈입니다…”라는 내용이 인상 깊었던 김형수 작가의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가 생각났다. 10년 전 책을 읽을 때 ‘고독을 견디는 것, 외로움과 싸워서 이기는 것’을 읽고는 카페에서 코를 박고 울게 했던 얄미운 책인데 말이다.

10년 만에 함께 펼쳐 든 <삶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에서 “‘사랑하기’에서 창작은 이미 시작된다”는 한 문장이 오늘의 나를 깊이 공감해 줬다. 일상의 사소한 순간도 어떤 마음으로 마주하느냐에 따라 예술이 돼줬다. 때 묻은 운동화 한 켤레로 비춰본 내 마음도 일상을 사랑한 작은 예술임을 자부하며, 얄미웠던 이 책의 꼬리표를 싹둑 잘라냈다.

김건희 울산시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 장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