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AI 데이터센터에 데이터가 없다면?

2025-07-10     경상일보

지난달 20일, 울산전시컨벤션센터(UECO)에서 SK그룹과 아마존웹서비스(AWS)가 함께하는 AI 데이터센터 출범식이 성대하게 열렸다. 울산 미포국가산업단지에 GPU 6만장 규모로 들어설 이 데이터센터는 향후 1GW급으로 확장돼 동북아시아 최대 AI 허브로 거듭날 것이라는 청사진이 제시됐다.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부처 장관, SK그룹 회장, 네이버와 카카오 대표 등 정·재계 주요 인사 400여명이 총출동한 이날 행사는 AI 시대에 대한 대한민국의 기대와 열망을 여실히 보여줬다.

하지만 화려한 출범식의 이면에는 우리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필자는 이날 행사에서 대통령실 관계자들에게 데이터의 중요성을 역설할 기회가 있었다. 때마침 같은 날 열린 AI 기업 간담회에서 정신아 카카오 대표 역시 “국가 관점의 데이터셋이 너무나 부족하다”며 우리 AI 산업의 고질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AI 데이터센터는 흔히 ‘AI 고속도로’에 비유된다. 그렇다면 이 고속도로를 힘차게 달릴 버스, 트럭, 승용차는 무엇인가? 바로 크고 작은 AI 기업들이다. 그리고 이 자동차들을 움직이게 할 ‘연료’는 다름 아닌 ‘데이터’다. 아무리 넓고 튼튼한 고속도로를 깔아도, 정작 달릴 자동차가 없거나 자동차에 주입할 연료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AI 데이터센터에 데이터가 없다면, AI 모델을 무엇으로 학습시킬 것인가?

이 질문은 특히 대한민국 산업수도 울산에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울산은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등 전통 주력 산업의 심장부다. 각 공장에서는 매일 상상 이상의 데이터가 쏟아져 나온다. 해외 연구자들은 우리가 가진 다양하고 품질 좋은 데이터에 감탄하지만, 정작 우리는 보안, 개인정보보호 등의 이유로 이 엄청난 잠재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이토록 아쉽게 느껴진 적이 없다.

AI 데이터센터가 들어선다고 해서 이 귀한 데이터들이 저절로 모이지는 않는다. 데이터를 보유한 기업, 기관, 개인이 자신의 핵심 자산을 순순히 내어놓을 리 만무하다. 데이터 제공에 대한 신뢰와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 선결 과제다. “내 공장의 데이터를 데이터센터에서 활용해도 안전할 것인가?” “내 개인정보를 제공해도 유출될 위험은 없는가?” 하는 물음에 명확한 답을 줘야 한다.

이러한 신뢰는 SK나 AWS 같은 특정 기업이 보장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데이터의 소유자가 제공 여부와 범위를 직접 통제하고, 제3자가 데이터를 AI 학습에 활용하더라도 원본 데이터는 절대 유출되지 않는다는 믿음을 줄 수 있는 정교한 법적·제도적·기술적 장치가 필요하다. 발생 가능한 모든 데이터 유출 시나리오를 사전에 검토하고,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설정하는 체계가 먼저 갖춰져야 한다.

다행히 길은 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에서는 데이터의 보안을 유지하면서도 활용도를 높이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각자의 데이터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AI 모델을 함께 훈련하는 ‘연합학습(Federated Learning)’, 원본 데이터의 통계적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가상의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합성 데이터(Synthetic Data)’ 기술 등이 대표적이다. 필자의 연구실에서도 민감한 내부 데이터에 직접 접근하지 않고도 외부 연구자와 공동 분석을 수행할 수 있는 ‘셀리나(SELINA)’ 시스템을 자체 개발해 활용하고 있다. 이처럼 기술은 데이터 유출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면서 그 활용도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제 우리의 선택이 대한민국 산업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정교한 데이터 활용 체계를 구축하여 수많은 국내 AI 기업이라는 자동차들이 고속도로를 마음껏 달리게 할 것인가? 아니면 이 비싼 고속도로를 소수의 빅테크 기업과 외국 기업들만 질주하도록 내버려 두고, 우리는 그저 약간의 ‘통행료’를 받는 신세에 만족할 것인가?

울산에 건설될 AI 데이터센터가 대한민국 산업의 제2 전성기를 이끄는 심장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비어있는 연료탱크를 어떻게, 그리고 무엇으로 안전하게 채울 것인지에 대한 범국가적인 고민과 합의가 필요하다.

이사야 유니스트 경영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