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분옥 시조시인의 시조 美學과 절제](74)산은 옛 산이로되-황진이(1506~?)

2025-07-11     차형석 기자

무한한 자연속 덧없는 인생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 아니로다
주야에 흐르거든 옛 물이 있을소냐
인걸도 물과 같도다 가고 아니 오는도다 <병와가곡집>


사람을 말 할 때, 인생을 담론할 때 최고의 격조는 역시 풍격(風格)을 떠올린다. 풍격은 예술의 혼이고, 인생 최고의 격조(格調)다.

비록 한 시대에 여성으로서 또 기생이란 천민의 직업여성으로서 유교 문화가 팽배한 시대를 관통하면서 살아온 여성 황진이를 대하면 그녀의 도도한 풍격에 가슴이 열린다.

감동적인 예술작품을 대할 때, 그 작품의 주인공의 기개(氣槪)를 잠시 풍격에 견주기를 더러 할 때가 있지만, 오늘 조선의 명기 황진이를 담(談)하면서 문득 마음속에 미뤄 찾아오던 벗을 만난듯이 망설임 없이 그녀의 풍도(風度), 그녀의 인생을 풍격에 견줘 얘기하고 싶어진다.

탁월한 문재로 걸출한 선비들 앞에 한치도 굴하지 않았으며 도도한 콧날을 세웠다. 우리 문학사에 이처럼 널리 불리고 오래 잊히지 않는 시인이 또 있다 해도 그녀만큼 시의 정서를 높이 올려놓고 많은 독자들을 울린 시인이 또 있겠는가.

삶의 이치를, 끊임없이 흐르는 물의 속성에 비유해 황진이는 흐르지 않고, 움직이지 못하는 산에 비유해 읊었다. 노자는 최상의 가치를 물과 같다고 한 것을 황진이는 유려한 시 한 수로 그것도 산과 인걸을 함께 노래 하나니. 그녀의 세상 보는 안목과 혜안은 지금도 과히 따라가기 어렵다.

그렇다. 시대를 관통한 많은 인물들은 단 백년을 살지 못하고 가고는 아니 오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만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의 목숨이 유한하다는 것을 아는 생명체가 또한 인간이기에 사람들은 주어진 백년을 어떻게든 잘살아 보려고 뻗대는 것이다.

참새는 여기저기 아무 곳에나 앉는다. 하지만 백로는 낙낙 장송에 앉아야만 어울리고 붕(鵬)새는 오동나무에만 앉는다. 황진이는 분명 우리 국문학사에 빛나는 명문장의 시인이였음이 분명하다.

사람은 가고 인물의 향기와 더불어 시조의 향기는 천년, 만년을 흘러 향기롭다.

분명 황진이와 시를 읊던 많은 문사들도 흐르는 물과 같이 가고 없다. 다만 황진이의 시 한 수는 우리들 가슴으로 흐르고 있다. 서늘한 삶의 이치를 노래하며 흘러가고 있다.

한분옥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