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1장 만남 / 보부상 서신 1호(10)

2025-07-15     차형석 기자

사람에게는 기쁨과 슬픔, 분노와 근심, 변덕과 두려움, 허세 등 온갖 감정이 있어서 마치 피리의 빈 구멍에서 소리가 나오고 축축한 곳에서 버섯이 자라나듯 그때그때마다 감정이 생겨나고 있다. 그런데도 그것들이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가 없으며, 그런 감정이 없으면 내가 없고, 내가 없으면 그것들을 느낄 수 없다고 장자는 말했다. 또한 누구의 명령을 받고 이 세상에 살고 있는지, 왜 사람은 살아야 하는지, 살아야 하는 이유와 실마리를 밝혀내지 못한 채 살고 있는 것이 인간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천동 자신이 아직까지 존재의 이유를 모른 채 방황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성장의 한 과정인가?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생각의 정리를 마친 천동은 다시 동굴집으로 갔다. 국화는 이미 일어나서 좁쌀과 수수를 섞은 잡곡밥을 만들어 놓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와?”

“일어나셨네요?”

“응, 허락도 없이 밥을 해서 미안해.”

“고마운 거지 미안한 건 아니네요.”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어서 먹어.”

“네, 누님도 같이 드세요.”

“난 한 번도 남자와 겸상을 해 보지 않아서….”

“겸상이 뭐라고. 우리는 그거보다 더한 잠도 같이 잤잖아요. 그게 무슨 대수겠어요. 물론 반가의 여인인 누님의 입장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새삼스럽게 내외를 한다는 거 우스운 일입니다. 강요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편하게 생각하고 겸상하세요. 저를 남자라고 생각하면 오늘 밤은 어떻게 여기서 같이 잠을 잘 수 있겠어요?”

국화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수긍을 하고는 겸상을 했다.

“누님, 여기서만큼은 삼강오륜이니 반상의 법도니 하는 거 잊어버리세요. 그거 생각하면 여기 못 있습니다.”

“알았어. 그렇게 할게.”

국화는 천동을 보며 활짝 웃었다. 천동도 혼자 먹는 밥보다는 함께하는 식사가 훨씬 맛이 좋게 느껴졌다. 식사를 마치고 차는 그가 끓였다.

“누님, 이건 구기자차입니다. 어제 많이 놀라셨을 것 같아서 오늘 아침 차는 이걸로 했습니다. 드세요.”

“고마워.”

천동의 따뜻한 말에 국화의 눈이 촉촉해졌다. 이런 기분은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것이었다.

차를 다 마신 후에 천동은 동굴을 나와서 사방을 살펴보았다. 그는 혹시라도 근처에 낯선 사람이 있는지 매의 눈으로 꼼꼼하게 살펴본 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동굴집으로 들어갔다.

글 : 지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