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멈추어야 보이는 것들: 방학, 그 잠시의 틈
한 해의 절반을 쉼 없이 달려온 아이들에게 7월의 방학은 원래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중고등학생의 약 78%가 방학에도 하루 4시간 이상 사교육에 참여하고 있으며, 절반 이상은 ‘방학이 학기 중보다 더 바쁘다’고 답했다. ‘멈춤’은커녕 쉴 틈 없이 달려야 하는 현실이다.
우리는 왜 멈춰야 하는지, 멈추면 무엇이 보이는지를 잊고 산다. 아이들은 매일 아침 학교와 학원, 학원과 독서실을 오가며 하루 대부분을 스케줄에 맞춰 움직인다. 멈춤은 ‘뒤처짐’과 같다. 사회는 아이들에게 쉬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멈추는 순간 기회를 잃는다는 강박이 아이들을 짓누른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는 보이지 않는 것이 많다. 아이의 내면 깊은 곳에서 자라는 호기심과 꿈, 그리고 자아성찰의 기회가 그렇다. 잠시 멈춘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 관심 있는 것, 나아가 삶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깨닫는다. 학습과 성적에 매몰된 생활에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나’라는 존재와의 만남이다.
방학은 본래 그런 시간이었다. 달리는 기차에서 잠시 내리는 작은 역처럼, 아이들이 바쁜 일상 속에서 내면을 돌아보고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작은 역’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방학이란 이름으로 계속되는 ‘과속’ 속에서 아이들은 점점 지쳐간다.
정서적 안정과 자기성찰은 학업 성취보다 오히려 장기적으로 더 중요하다. OECD의 ‘학생 삶의 질 보고서(2023)’에 따르면 정서적으로 안정된 학생은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학습 몰입도가 12% 이상 높고, 자기주도 학습 능력도 뛰어나다. 이는 멈춤이 단순 휴식 이상의 교육적 가치가 있음을 보여준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아이들의 정서적 부담은 더욱 커졌다. 사회적 고립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번아웃’을 겪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조사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고등학생의 32%가 번아웃 증상을 경험했다. 이들은 멈출 수 없는 경쟁 사회의 피해자다. 그렇기에 교육 현장과 가정에서는 ‘멈춤의 시간’을 적극 마련해야 한다. 방학은 단순한 공부의 연장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를 만나고 성장할 수 있는 ‘틈’이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아이들은 멈춤의 시간을 다음과 같이 활용할 수 있다.
첫째, 자기 성찰과 정서 회복 시간 갖기다. 명상이나 일기 쓰기, 감정 정리하기 같은 조용한 시간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한다. 이는 정서적 안정감을 높이고 스트레스를 줄이며, 자기 이해를 증진시켜 학습 집중력 강화로 이어진다. 둘째, 흥미와 관심사 탐색하기다. 평소 해보고 싶었던 취미를 시작하거나 책 읽기, 다큐멘터리 시청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해 창의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운다. 이는 자기주도적 학습 태도를 형성하고 전인적 성장과 삶의 만족도를 높인다. 셋째, 가족 및 친구와 질 좋은 시간 보내기다. 가족과의 대화, 산책이나 운동, 친구들과의 소통과 놀이가 사회적 유대감을 강화하고 정서적 지지망을 만든다. 이는 공동체 의식과 협동심 향상으로 이어진다. 넷째, 자연과 교감하며 신체 활동하기다. 산책, 캠핑, 운동 등 야외 활동은 신체 건강 증진과 면역력 강화에 도움을 주고, 정신적 안정과 긍정적 정서 증대를 돕는다. 또한 집중력 향상과 불안 감소 효과가 있다. 마지막으로 자원봉사나 사회 체험 활동에 참여하기다. 지역사회 봉사, 문화 행사 참여 등은 사회성 및 책임감을 키우고,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높이며 진로 탐색과 자기효능감을 증대한다.
이처럼 ‘멈춤’의 시간은 단순 휴식이 아닌 내면과 외부 세상과 건강한 관계를 맺으며 성장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다. 방학 등 휴식 기간에 이러한 활동을 통해 아이들은 심리적·신체적 건강을 회복하고 자기주도적 성장 동력을 얻는다. 이번 여름방학, 아이들에게 그 ‘잠시의 틈’을 선물하자. 그 틈에서 아이들은 자신만의 빛을 발견하고, 더 단단한 어른으로 자랄 것이다.
정은혜 한국지역사회맞춤교육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