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천의 암각화 세계가 인정했다]하나의 바위면 위에 여러 세대 생활양식 표현, 전 세계적으로 ‘유일무이’

2025-07-16     석현주 기자

지난 12일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린 제47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반구천의 암각화’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됐다. 이로써 산업수도 울산은 세계인이 주목하는 문화유산 도시로서 새로운 위상을 갖게 됐다.

반구천의 암각화 만큼 고래의 종류와 사냥법, 생태학적 특징이 자세하게 드러나는 암각화는 전 세계에서 찾기 어렵다. 그렇다면 선사인들은 왜 암각화에 그림을 남겼을까. 단순히 고래를 좋아해서 재미 삼아 그린 그림이 아니다.

고래를 잡아야 살 수 있었고, 고래를 잡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고, 고래에 대한 지식을 후대에 전달해야 했고, 고래를 무사히 잡게 해달라고 신에게 기도하는 등의 다목적 이유로 그림을 남긴 것으로 추측된다. 예술성도 뛰어나다.

춤추는 사람, 물을 뿜는 고래 등 형상들이 예술적으로 뛰어나고 정교하다. 본보는 반구천 암각화의 역사·문화적 의미를 재조명하고,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를 점검하는 기획보도를 두차례에 걸쳐 마련했다.
 

◇외형 묘사 넘어 인간과 고래의 교감

울산은 예부터 고래의 도시였다. 반구천 암각화는 이를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거다. 수천년 전 선사인들은 울산 앞바다를 오가던 고래들을 관찰했고, 그 생태와 사냥 장면을 바위 위에 새겨 후대에 전했다.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는 혹등고래, 귀신고래, 범고래, 북방긴수염고래, 참돌고래 등 50여마리의 고래와 해양 동물들이 묘사돼 있다. 혹등고래의 물 위 점프(브리칭), 어미가 새끼를 등에 업고 수면 위로 올리는 장면, 사냥꾼이 작살을 던지는 모습까지 고래의 삶과 죽음을 세밀히 기록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새끼를 등에 업은 어미 고래를 꼭 살펴보라고 추천한다.

출산한 새끼 고래가 첫 숨을 쉬게 하려고 어미 고래가 새끼를 등으로 받쳐 물 위로 올리느라 애쓰는 모습이다. 본래 새끼 고래는 어미의 몸에서 나오면 제 힘으로 떠올라 물 위로 머리를 내밀고 숨을 쉬어야 하지만, 차가운 물의 기운을 이겨내지 못하는 새끼 고래는 물위로 가라 앉기 시작한다. 이를 지켜본 어미고래가 새끼의 몸을 받쳐 물 위로 오르게 하려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귀신고래 그림에는 작살의 흔적을 함께 남겼다. 호기심이 많은 귀신고래는 배가 보이면 ‘이게 뭐지?’하는 마음에 쉽게 다가와 사냥하기도 쉬웠다고 한다. 이처럼 대곡리 암각화의 고래들은 단순한 외형 묘사를 넘어 인간과 고래 사이의 교감, 사냥의 긴장감, 생태적 특징까지 세밀히 포착한 선사예술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예술성과 상징성, 세계가 주목하다

반구천 암각화는 얕은 선각과 깊은 선각을 교차로 사용해 입체감을 살리고, 큰 동물과 작은 동물을 교묘히 배열해 조형미를 높였다. 단순히 그리는 것을 넘어 상징화와 추상화의 수준까지 도달한 작품이다. 춤추는 사람, 사냥꾼, 고래떼 등은 생명의 역동성과 의례의 긴장감을 동시에 전하며 관람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다. 이 때문에 유럽 선사미술학회 학자들은 반구대 암각화를 ‘반드시 인용해야 하는 동아시아 대표 선사예술 유산’으로 꼽고 있다. 단순 기록물이 아니라 예술과 신앙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걸작이라는 평가다.

특히 반구천의 암각화는 선사인들의 신앙 행위로도 주목받는다. 바위신앙은 선사시대 인류가 크고 독특한 바위, 산, 절벽에 신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숭배하던 신앙 형태다. 강가 절벽에 위치한 반구천 암각화는 물(생명), 절벽(죽음과 재생), 높음(초월)의 상징성이 겹쳐진 신성한 장소였을 가능성이 크다.

연구자들은 “동물과 사냥 장면을 바위에 새긴 것은 신령에게 ‘우리에게 복을 달라, 사냥을 성공하게 해달라’고 비는 주술적 행위였을 것”이라고 본다.

또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바위 표면에는 ‘유(遊)’로 읽히는 글자가 남아 있는데, 이는 멀리 왕경에서 온 이들이 기도를 드리며 남긴 기록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여러 세대가 덧그린 공동체의 연대기

반구천 암각화의 가장 큰 역사적 가치는 한 시기의 산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약 350여점의 그림들은 신석기 시대부터 역사시대까지 수천년에 걸쳐 새겨졌다. 고래, 물고기, 사슴, 호랑이, 사람 형상 등은 같은 공간에 반복적으로 새겨지거나 덧그려졌다.

이는 여러 세대의 인간이 하나의 바위면을 공유하며 자신들의 기억, 염원, 세계관, 생활상을 축적한 유산이 됐다. 이런 특성 때문에 학계에서는 반구천 암각화를 단순한 과거 유물이 아닌 선사시대인들이 세대를 넘어 기억을 공유하고 신앙을 계승한 장으로 평가한다.

울산대곡박물관·울산박물관장을 역임한 신형석 울산시 문화재위원(현 대구근대역사관장)은 “이제는 역사학자나 전문가들의 평가를 넘어 울산 시민들이 반구천 암각화를 우리의 유산으로 인식하고, 그 가치를 함께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문화·역사적 가치와 아름다운 자연이 한데 어우러진 대곡천에서 선사시대 예술가들이 위대한 걸작을 탄생시킨 것처럼 이 공간에서 새로운 세계적 예술의 성과가 태어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석현주기자 hyunju021@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