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K-콘텐츠에서 K-에너지로

2025-07-17     이애정
지난 5일,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 힐튼호텔에서 ‘2025 한-우즈벡 경제협력 포럼’이 열렸다. 한국동서발전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우즈베키스탄 투자산업통상부(MIIT)가 공동 주최하고, 주우즈베키스탄 대한민국대사관과 주한우즈베키스탄대사관이 후원했다. 두산에너빌리티, LG에너지솔루션, LS일렉트릭, 삼성물산, 현대엔지니어링 등 전력 분야 주요 5개 한국기업 관계자, 지역 중소기업을 포함한 울산시 해외시찰단, 우즈베키스탄 정부 고위인사 등 150여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포럼 전날인 4일에는 기업별 개별 상담회가 열려, 5개 한국기업들이 우즈벡 에너지부차관 등 관계자 11명과 함께 전력시장 현황과 협력방안을 주제로 심도있는 질의응답을 나눴다.

이튿날에는 양국 에너지기업간 ‘K-에너지 진출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에너지분야에서 양국의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의 첫 단추를 끼웠다. 한국형 에너지모델의 가능성을 실험한 첫걸음이자, ‘K-에너지’가 우즈벡 현지에 뿌리내리기 위한 의미있는 출발이었다.

한국동서발전은 지난 4월부터 현지에 직원을 파견해 우즈벡 투자산업통상부, 주우즈벡 대한민국대사관과 ‘K-에너지’의 진출을 위한 협력기반을 조성해왔다. 복합화력, 전력기자재, EPC(설계·조달·시공), 에너지저장장치 등 분야별 전문기업을 섭외해 협의체를 구성했다. 각 기관이 전문분야의 역할을 분담하고,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수출입은행과 연계해 중장기 진출 전략을 구체화할 수 있도록 협력을 요청했다.

우즈벡 에너지부는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현지에서의 행정지원을 담당하고, 울산시는 울산기업의 에너지분야 진출을 지원한다. 한국동서발전은 선정 사업의 개발과 운영을 총괄하며, 현지 인력양성 및 유지관리 체계 구축 등 통합형 진출모델을 추진할 예정이다. 에너지 생태계를 함께 구축하는 방식을 통해 양국 사이의 신뢰를 기반으로 한 지속 가능한 협력체계를 마련하겠다는 의미다.

우즈베키스탄은 인구 3600만명, 연 6% 이상의 경제성장을 지속하는 중앙아시아의 핵심 신흥국이다. 2024년 실질GDP 성장률은 6.5%에 달했으며, 2025년에도 비슷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간 2%대 인구 증가에 따라 2030년까지 전력 수요가 현재의 2배 수준까지 급속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노후 발전설비 교체와 계통 현대화가 시급한 과제로 부상했다. 한국 기업의 복합발전, 스마트 전력설비, 에너지저장장치 기반의 뛰어난 기술력이 현지 수요와 정확히 맞물리고 있는 것이다.

K-콘텐츠를 이야기하는 우즈베키스탄 청년의 눈빛처럼, 우즈벡은 한국에 대한 높은 관심과 기대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호자예프 우즈베키스탄 경제부총리는 환영사에서 ‘에너지 자원개발에 한국기업들의 적극적인 투자와 협력을 기대한다’고 밝히며, 한국형 에너지모델인 ‘K-에너지’에 대한 관심과 현실적 수요를 동시에 표출했다.

그러나 내륙국이라는 지리적 제약과 높은 물류비 부담은, 사업 추진에 있어 주요한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기업의 책임있는 사업수행역량 실행, 기업의 선진기술 교류, 정부간 제도적 협력체계 구축이 유기적으로 병행되어야 한다. 단기적인 수주보다는 신뢰 형성을 통한 점진적 확장의 전략이 중요하다. 에너지 협력 역시 기술수출 수준을 넘어 국가 브랜드와 연결된 종합 파트너십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러한 협력방식은 실제 현장에서도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한국동서발전의 해외사업 사례 중 하나인 인도네시아 칼셀발전소가 대표적이다. 현지 종합에너지기업인 알람트리 그룹과 공동출자하고, 시공은 현대엔지니어링이 맡았다. 공기업, 민간기업, 현지 파트너간 역할 분담과 협업체계가 현지 여건에 맞춰 유연하게 작동했다. 2019년부터 5년째 안정적인 운영으로 인도네시아정부로부터 ‘최우수 발전소’로 선정되었으며, 전체 투자금의 약 51% 회수 등 운영 안정성과 재무적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성과를 축적하고 있다.

우즈벡의 경제 성장세는 과거 우리나라의 발전경로와 많이 닮았다. 빠른 인구 증가와 산업화 초기국면에서 ‘한강의 기적’을 가능하게 했던 안정적인 에너지 인프라처럼, 오늘날의 우즈벡도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신뢰할 수 있는 에너지파트너를 필요로 한다. ‘K-에너지’의 첫걸음은 이제 막 시작됐지만, 민관 협력을 바탕으로 한 일관된 전략과 실행이 뒷받침된다면, 그 여정은 분명 깊고 길게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권명호 한국동서발전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