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태의 인생수업(3)]직업이라는 인생 배역, 오늘 나는 어떤 역할을 살고 있는가
삶은 하나의 거대한 무대다. 무대 위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배역을 맡아 살아간다. 어떤 이는 의사로, 어떤 이는 교사로, 또 어떤 이는 세상의 이목에 드러나지 않는 자리를 묵묵히 지킨다. 이 배역은 ‘직업’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때론 ‘천직’이라는 더 깊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직업은 단순한 생계의 수단을 넘어, 나의 존재를 정의하고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고유한 서사다. 그러나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직업은 먼저 생존의 문제라는 것이다. 아무리 고귀한 의미를 부여하더라도, 직업은 생활비를 감당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현실적 기반 위에 놓여 있다. 밥벌이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숙제이며, 그 숙제를 감당하지 못하면 삶의 다른 이야기들도 무너진다. 직업은 이상이기 이전에 본능적인 생존 도구이며, 자기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기둥이다.
또한 직업은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능력을 갖게 만드는 훈련의 장이기도 하다. 직업을 통해 우리는 기술을 배우고, 문제를 해결하고, 인간관계를 맺으며 성장한다.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사회 속에서 쓰임을 확인하고, 점점 더 유능한 존재가 되어간다. 반대로 일을 놓는 순간,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무기력해지고, 무능력하다는 착각에 사로잡히며, 생존 경쟁에서 한 걸음씩 밀려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평생현역이라는 개념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일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의미의 문제다. 몸은 은퇴할 수 있어도, 마음까지 은퇴해선 안 된다.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삶의 대사는 멈추고, 그 자리를 침묵과 공허함이 채운다. 진정한 은퇴는 일이 아니라 의미로부터의 퇴장이다.
직업은 나를 세상과 연결하는 다리다. 일을 통해 우리는 타인에게 기여하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직업은 크고 화려할 필요가 없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도, 직책이 근사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내가 몰입할 수 있고, 나답게 살아갈 수 있으며, 그 일을 통해 단 한 사람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게 만든다면, 그것은 충분히 숭고한 배역이다. 가끔 우리는 별일 없는 날에도 밤에 뿌듯한 마음으로 잠든다. 그건 오늘 하루, 내가 맡은 역할에 충실했다는 깊은 성취감 때문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누군가 대신 살아주지 않아도, 나는 내 배역을 살아냈다는 자각은 가장 고귀한 자기 위안이 된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낸 사람은, 삶의 끝에서 담담히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 배역을 진심으로 살았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지금, 당신은 어떤 배역을 살고 있는가. 그 배역은 당신을 숨 막히게 하는가, 아니면 살아 있게 하는가. 혹시 너무 오래 남이 써준 대본만 따라 살고 있진 않은가. 이제는 당신의 목소리로, 당신만의 대사를 말해야 할 때다. 하늘이 맡긴 단 하나의 역할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진실한 연기 아닐까.
정안태 '오늘하루 행복수업' 저자·울산안전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