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세계유산 반구대 암각화, 수몰은 이제 끝내야 한다

2025-07-21     경상일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울산 반구대 암각화가 지정된 지 일주일 만에 물에 잠겼다. 울산에 내린 집중호우로 19일 오전 5시 사연댐 수위가 53m를 넘어서며 잠기기 시작해, 오후 1시경 수위가 57m를 넘자 암각화는 완전히 수몰됐다. 이는 2023년 10월22일 이후 21개월 만의 일이다.

지난 12일 ‘반구천의 암각화’라는 명칭으로 천전리 명문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잉크가 채 마르기 전에 암각화가 물에 잠겼다는 소식이 전 세계에 타전됐다. 이는 세계가 인정한 유산을 여전히 방치하고 있는 우리의 치부를 드러낸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사연댐 상류에 자리한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발견 이후에 줄곳 침수와 노출이 반복돼왔다. 최근 10년간 해마다 40~80일씩 물에 잠겼다. 2023년에는 74일 연속 침수되는 등 85일간 ‘물고문’을 겪었다. 이로 인해 석각 훼손을 가속화했고,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손상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유산이자 복원 불가능한 인류의 유산이 이렇게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는 현실은 문화 보존 체계의 구조적 결함을 드러낸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의 보존 대책이 여전히 매우 느린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자연월류형 구조인 사연댐에 수위 조절용 수문(3개) 사업은 생각보다 더 지지부진하다.

울산시는 하루 4만9000t의 생활용수를 포기하는 대신 수문 설치에 적극 협조하고 있지만, 한국수자원공사는 설치 공사를 내년 착공해 2030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이런 속도라면 향후 5년간 암각화는 여름철마다 침수될 것이며, 유산 훼손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가속될 것이다.

더 이상 세계유산이 훼손되지 않도록, 실질적이고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현재의 상황은 말로는 보존을 강조하면서, 실제로는 훼손을 방임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실효성 있는 대응이 시급하다. 수문 설치 일정을 앞당기고, 그 전까지는 임시 차수벽이나 긴급 수위 조절 장치 같은 현실적 대응책이 병행돼야 한다. 또 실시간 수위·강우 예측 시스템을 정비해 문화유산에 대한 대응력을 높여야 한다.

반구대 암각화는 단지 울산의 문화재가 아니다. 인류가 남긴 선사 예술의 정수이자, 우리가 세계로부터 부여받은 책임의 증표다. 날씨에 따라 유산의 운명이 흔들리는 현실은 더는 용납돼선 안된다. 이 유산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과연, 지킬 자격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