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베란다의 작은 텃밭, 치유농업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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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베란다의 작은 텃밭, 치유농업의 시작
  • 경상일보
  • 승인 2021.06.0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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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영혜 울산과학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울산북구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장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해 ‘코로나19가 60대 여성의 건강행태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연구를 한 적이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나타나는 60대 여성의 건강에 대한 생각과 생활에서의 변화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 질적 연구였다. 연구는 그룹 인터뷰 형식으로 거주지 가까운 곳에 작은 텃밭을 가꾸고 있는 여성을 대상으로 했고 텃밭이 그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조사를 시작했다.

60대 여성들은 코로나 이후 건강에 대해 더 조심하고 건강기능성 식품이나 영양제를 의도적으로 더 챙겨먹으려는 경향을 보였다. 무엇보다 코로나 시기 초기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친구나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것에 적응이 되지 않아서 많이 외롭고 힘들었지만 그나마 작은 텃밭이 천국이나 다름 없다며 많은 비중과 의미를 두고 있었다.

“씨앗을 뿌리고 채소를 정성들여 키우고 농작물에 혼자 말도 하고 수확까지 하면서, 처음 접해서 힘들고 갑갑할 때도 있었지만, 코로나 우울은 없었다” “텃밭 농업을 하는 이웃들이 가까이서 텃밭 가꾸는 걸 보면 외롭지도 않고 서로 의지도 되고 마음도 편안해진다” “손바닥만한 텃밭하고 농작물들한테 정말로 고맙다” 말그대로 ‘치유농업’이었다.

치유농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생산 위주의 일반농업과는 다른 접근이다. 농업활동을 통해 환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심리적인 건강에 도움을 주는 치유와 건강증진 활동이다. 최근 농촌진흥청이 주관한 치매노인 대상 농업치유 프로그램에서도 경증치매 노인의 인지기능 향상과 기억력 향상 그리고 우울감 회복에 도움이 됐다. 햇볕 아래에서 식물자원을 가꾸고 활용하는 신체적 활동이 감각기관을 자극하고 인지·사회적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준 것으로 해석됐다.

치유농업은 이미 유럽과 일본에서는 그 효과를 토대로 관련사업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 정부는 지난 3월25일 치유농업이 치매 예방이나 우울감 치유, 학교폭력 완화 등에 효과가 있다고 판단하여 ‘치유농업 연구개발 및 육성법’을 제정했다.

농업과 농촌의 자원을 활용한 치유농업으로 국민건강 증진은 물론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기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농촌진흥청은 과학적 효과 검증, 산업화기술개발, 서비스모델 발굴, 전문인력 양성과 정보망 구축을 중심으로 연구를 추진한다는 4대 중점 추진방향을 발표했다. 농업활동의 유형별 효과분석, 장애인과 환자의 편리함과 효율성을 위한 유니버셜형 재배도구 개발, 맞춤형 프로그램 개발과 치유농업을 위한 공간조성, 지원을 위한 제도와 정책정비 그리고 전문인력 양성, 정보망 구축 등 실질적인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치유농업은 국가적 차원의 사업이 됐다. 농업과 의학 분야의 협업으로 치유농업을 통한 국민 건강증진을 꾀하고 있고 각 지자체도 앞다투어 특성과 환경에 맞는 작물을 적용해 치유농업과 관련 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치유농업의 효과는 치매 환자뿐 아니라 모든 사람과 모든 연령대에 적용될 수 있다. 씨앗을 땅에 심을 때부터 작은 새싹, 성장과 열매나 수확까지 흙을 만지며 땅을 갈고 물을 주고 풀을 뽑으면서 이루어지는 채소와의 교감으로 사람의 정서와 심리적 안정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농업활동 중에는 잡념이 사라져 스트레스는 감소되고, 햇볕과 다양한 움직임을 통해 육체적 건강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치유농업은 거창해야만 하는 대단한 사업은 아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은 주말농장, 도시텃밭과 같은 작은 농업활동으로 그것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를 잘 알고 실천하고 있다.

체험하는 작은 농업활동과 새로운 시도, 직접 기른 채소를 먹어보는 즐거운 식생활이 서로 연결고리가 되어 심신의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작은 텃밭이 코로나 시기에 자신에게 천국이었다고 표현했던 여성들처럼 햇볕 좋은 우리 집 베란다에서 작은 재활용 상자로 치유농업을 시도해보면 어떨까. 6월, 열무, 단배추, 상추모종, 대파모종으로 시작하는 베란다 텃밭이 치유농업이 될 수 있다.

정영혜 울산과학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울산북구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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