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은 제2의 경주로 불리는 역사의 고장이다. 보물급 문화재가 수두룩하다. 그 중심에 술정리 동·서 삼층석탑이 있다. 두 탑은 쌍탑이 아니다. 술정리 마을 중심에 있는 동 삼층석탑에서 제법 떨어진 술정리 서쪽에 서 삼층석탑이 위치하고 있다.
국보인 동 삼층석탑에 마음을 빼앗겨 무시로 찾아다닌 적이 있다. 오래된 구멍가게와 낮은 슬레이트 지붕들, 노인정의 낡은 대문에 둘러싸여 있어도 기품이 서려 있었다. 탑을 지키는 느티나무가 있어 동네 사람들의 쉼터요 아이들에겐 더 없이 좋은 놀이터였다. 지금 술정리 동 삼층석탑 주변은 공원이 되었다. 국보의 위엄을 갖추기 위해 탑 주변으로 넓게 철책을 두르고 있어 안부 인사조차 할 수 없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멀어진 그대가 되어 버렸다.
보물 제520호 술정리 서 삼층석탑은 이중 기단 위에 삼층의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신라석탑이다. 동네 뒤쪽에 제 설 자리만 겨우 차지했는데 보수공사를 거쳐 새 단장을 하고 우릴 맞이한다. 주변에 예쁜 공원도 조성되었다. 무엇보다 철책이 없다. 덕분에 위층 기단을 가득 메운 안상문을 가까이서 들여다본다. 입 꼬리가 저절로 올라간다.
동 삼층석탑보다 세련미는 떨어지지만 균형 잡힌 훌륭한 탑이다. 창녕의 진산인 화왕산을 바라볼 수 있는 명당이다. 창녕을 찾은 답사객들은 술정리 동 삼층석탑 앞에선 한참을 머물지만 서 삼층석탑을 찾는 이는 드물다. 동네 사람들만 무심히 지나친다.
먼 그대가 아닌 가까운 동무가 되어 탑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담도 없는 지붕 낮은 집을 기웃댄다. 두어 달 그 집에 세 들어 살고 싶다. 달님이 함박꽃처럼 피는 보름밤이나 별빛이 푸르게 내리는 밤에 탑돌이를 해 보리라. 화왕산의 진달래가 붉게 필 때, 송현동 고분군 주위로 코스모스가 물결을 이룰 때는 사심 없이 꽃 공양도 하고 싶다. 그렇다면 적어도 일 년은 탑과 함께 동트는 아침을 맞이해야만 ‘나는 이렇게 보았다’ 이 한 줄은 쓸 수 있지 않을까.
배혜숙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