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눈(目)’의 길-나를 살피는 ‘성찰’과 세상을 내다보는 ‘안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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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눈(目)’의 길-나를 살피는 ‘성찰’과 세상을 내다보는 ‘안목’
  • 경상일보
  • 승인 2023.02.14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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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해 시인·울산문인협회장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밖에’

시인 정지용(鄭芝溶, 1902~1950)은 그의 작품 ‘호수’에서 절실한 그리움을 효과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눈을 감고 내적 시야를 확대함으로써 보고 싶은 마음을 극대화했다. 여기서 ‘눈을 감는 행위’는 현실을 회피하는 게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보기 위해‘마음의 눈’을 뜨는 것을 의미한다.

시각(視覺)은 인간에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불가결한 감각이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눈(目)’은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다시 잠들기 전까지 숱한 사물과 사건을 보게 되는 만큼 우리에게 광범위한 활동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어떤 일의 좋고 나쁨과 같은 가치를 분별하는 안목(眼目)도 눈으로부터 나오고, 정책이 제대로 실행되는가를 감시(監視)하는 것도 시민의 눈이다.

가장 중요한 부분을 완성한다는 의미의 ‘화룡점정(畵龍點睛)’에도 눈이 등장한다.

이처럼 인간의 시력은 긴요하나 한편으로는 지극히 불완전하므로 그 기능을 보완하기 위해 관련 부품이나 기계적 장치들이 많이 개발되었다. 안경이 불편한 사람은 콘택트렌즈를 착용하고, 아주 미세한 것은 현미경의 힘을 빌리며, 작은 것은 확대경을 통해 보고, 먼 것은 망원경으로 당겨서 본다. 또 목표물을 직접 볼 수 없을 때는 잠망경을, 내부를 속속들이 탐지하기 위해서는 내시경, X-레이, 초음파, MRI 등의 첨단기술도 활용한다.

‘본다’는 것에는 일차적으로 관찰(觀察)의 단계가 있다. 이 때의 ‘찰(察)’은 ‘살핀다’는 뜻이다. 눈을 통해 사물이나 현상, 동태 따위를 관찰할 때 이는 주로 대상에 대한 외적, 형식적 탐색이다.

다음은 성찰(省察)로, 나의 부족함을 살피고 살펴보는 일이다. 우리가 일과를 마치고 일기나 글을 쓰는 행위도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것, 삶을 반성하고 관조(觀照)하는 내적 탐색의 과정이다. 타인의 허물을 들추어내기 전에 먼저 나의 처신에 대해 마음의 눈으로 들여다보는 태도가 성찰이다.

마지막으로 통찰(洞察)이 있다. 이 단계는 사물을 속속들이 탐색함으로써 세상의 마음을 냉정하게 꿰뚫어 보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므로 삼라만상의 이면에 내재하는 진면목(眞面目)을 잘 살펴보고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는 고차원적 단계이다. 이는 일반인이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가 아닐까 한다.

세상에는 눈을 뜨고도 잘 보지 못하는 청맹과니가 있는가 하면, 눈을 감고도 마법처럼 더 많은 것을 보게 하는 문학적 눈도 있다.

어쩌다 앞길이 잘 보이지 않을 때는 시점이나 관점을 달리하면 훨씬 더 큰 세상을 볼 수도 있다. 바른 눈으로 진실한 세상을 보기 위해서는 어안(魚眼)렌즈처럼 왜곡하거나 굴절시키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는 안목(眼目)을 길러야 한다. 물론 마음이 정화되지 않아 판단이 흐려질 때는 한발 물러서서 바라보는 자세도 필요하다.

필자는 문인의 한 사람으로, 정책을 입안하는 분들이 문화의 사각지대를 잘 시찰(視察)해 파악함으로써 그 향유자인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힘써 주실 것을 당부하고자 한다. 여유와 힐링이 필요한 곳에 어떤 정책을 우선해 추진할 것인지 세심한 눈으로 살펴보시기를 바란다.

이제, 막연히 ‘옳고 그름’이라는 이분법적 관계설정에 앞서 우선해야 할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눈(眼目)’이 필요하다.

모든 분야에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있는 예언가는 아니더라도 지금은 바둑에서처럼 자신이 맡은바 한수 앞이라도 내다볼 줄 아는 혜안(慧眼)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권영해 시인·울산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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