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 줄 알았지만 일상이, 삶이 사랑을 빼고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눈에 잘 보이지 않아도, 마치 오후의 눈부신 햇볕 속 텅 빈 거미집처럼 희미해도 사랑은 있다. 문득 거미줄에 걸려보면 비로소 안다. 참 가늘고도 질긴 사랑의 힘을.
정정화의 <꽃눈>(실천문학사 펴냄)에서 사랑은 상대를 옭아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옭아매이는 것이다. 책 속 주인공들의 어쩌지 못하는 모습은 거미줄에 걸린 곤충들 마냥 발버둥 치기도 하고 숙맥이 되어 잠잠하기도 한다. 주인공들은 사랑의 집을 버렸으나 정작 버리지 못해 되돌아가고, 죽고 싶었으나 끝까지 희망을 바라며 참고 견딘다. 함부로 일을 저지르지도 않고 과격하지도 않는 인물들, 발화되지 못한 말들이 많은 인물들. 끝내 해피앤딩으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의 결말들이 남다르다.
저자 정정화는 울산에 사는 작가여서인지 친숙한 느낌이 든다. <꽃눈> 속 8편에 나타나는 공간적 배경 또한 익숙하다. 태화강, 대숲, 태화강대공원의 해바라기 밭, 이웃도시 포항, 이웃 강인 낙동강 등으로 친숙한 배경을 그리고 있다. 걷는 시간을 사랑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소설을 읽을 때 작가와 함께 익숙한 산책로를 걷는 듯하다. “있잖아요~~ 그녀가요~~ 글세 말이에요~~”라는 작가의 두런거리는 목소리도 들려오는 듯하다.
소설이 시대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정정화 작가의 <꽃눈>또한 이 난해하고 부패한 시대에, 한 인물 인물에게서 개인적으로 기대하는 소망이 무엇인지 느껴진다. 그것은 사랑. 회복하는 사랑이라고 본다. 어떻게든 사랑의 반석에 다시 발을 올려놓고 삶이 이어지기를 소망하는 작가의 세계관을 볼 수 있다.
이 책은 서늘한 우리 삶을 늘 양지쪽으로 돌아앉게 하는 힘을 준다. 그 어떤 누구라도 정정화 작가에게 캐스팅 된다면 끝나지 않는 사랑, 가늘지만 오래오래 진행되는 사랑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결국 따뜻해질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변화되도록 하는 영향력을 주는 것 같다. 설성제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