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광역시 동구 방어진항과 슬도 사이에는 옛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작은 어촌마을이 있다. 조선시대 이곳에 석성을 쌓아 말을 붙잡아 두거나 말몰이를 했던 목장이 있었는데, 그 석성의 끝부분이라 하여 ‘성끝’이라는 지명이 구전되면서 이 마을은 ‘성끝마을’이라 불리게 됐다고 한다. 성끝마을은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해 100여년동안 주민들의 삶을 이어온 터전이었으며, 어른이 양팔을 벌리면 양쪽 담벼락에 손끝이 닿을 만큼 좁은 골목과 낮은 지붕으로 정겨운 1970·1980년대 어촌마을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울산의 숨은 관광명소이자, 최근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도 각광받고 있는 동네이기도 하다.
이렇듯 한적한 동네에 스며든 관광명소로서의 기운이 반가울 법도 하지만, 활기가 무색해질 만큼 이곳은 비운이 서려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동구에서 2009년도부터 새로운 관광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대왕암공원 조성사업’으로 이 지역은 이주대상 지역에 놓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117가구 266명 정도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이곳은 주변 해안 지역이 1962년 울기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대부분의 토지가 기획재정부 소유의 국유지로 되어 있다. 이러한 관계로 마을 주민들은 기획재정부와 5년마다 토지 임대계약을 체결하고 임대료를 지불하며 살아가고 있다.
성끝마을 주민들은 이주를 바라지 않는다. 그들은 대왕암공원 조성으로 인한 철거·이주 등을 빌미로 더 큰 보상을 원하지도 않는다. 그저 3~4대째 대를 이어 생계를 이어온 삶의 터전인 이곳이 통영 동피랑마을처럼 향토어촌마을로 보존되길 희망하고 있으며, 안심하고 생업에 전념할 수 있기만을 바라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동구청에서는 대왕암공원 체류형 관광지 지정 관련 용역을 진행 중이며, 최종 결과에 따라 향토마을로서 성끝마을의 보존방안에 대하여 주민들과 논의할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용역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다소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성끝마을 주민들의 안전을 크게 위협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실제로 지난 1월23일, 성끝마을 안쪽 단독주택에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최초 신고 후 15분 만에 소방차가 도착했지만 소방도로가 없는 탓에 진입에 애를 먹고 결국 대원들이 직접 수십미터 떨어진 도로에서 소방호스를 들고 와 진압하였다. 하지만 화재는 골든타임을 놓쳐 초기 진화에 실패하면서 완전진압까지 1시간20분 가량 소요되었고, 가옥 2채가 화마에 휩싸여 부분 소실되어 이재민 4명이 발생하였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보일러 순환펌프에서 시작된 불씨가 마을 전체를 집어삼킬 뻔한 이번 화재는 담당 소방서 인력 전체가 투입되는 대응 1단계까지 발령되고 나서야 진압될 수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성끝마을 주민들은 이번 화재가 소방도로 확보 등 대책이 신속하게 마련됐다면 방지할 수 있었던 사고였다는 지적과 함께 성끝마을에 대한 근본적인 안전대책이 필요하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번 화재 발생 사고는 그동안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성끝마을의 상황을 여실히 드러내며 재난 대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주민의 이주대책이나 보존방안은 장기적으로 서로 협의해서 개선해야겠지만, 주민의 안전과 관련한 부분이라면 소방차와 구급차량 등이 진입할 수 있도록 도로 폭을 넓히거나 그것이 어렵다면 소화전 설비라도 우선 설치를 고려하여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재난에 철저히 대비해야 할 것이다.
조선업 불황의 장기화에 따라 동구 지역의 특성을 살린 바다 자원 관광사업이 시급하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주민들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최소한 주민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주거환경을 조성하는 것 또한 행정에서 해야 할 의무이다. 따라서 무허가건축물 일지라도 국가나 지자체에서는 더는 방치하지 말고 주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이들을 보호해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성끝마을 주민들은 생존을 위협받으며 불안감에 떨고 있다.
김수종 울산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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