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는 잠들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다른 어느 나라보다 화려한 밤을 자랑하던 우리나라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영업시간 제한은 자영업자와 야간근로자에게 너무나 가혹했다. 영업시간 제한이 풀리고 도시는 다시 일상을 회복하고 있지만 늦은 밤까지 생계를 위해 불을 밝힌 채 일터를 지키는 그들의 삶 역시 환하게 빛나고 있는지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24시간 운영, 새벽배송, 대리운전….’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해진 말이다. 밤이 깊어도 대부분의 가게는 문을 닫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새벽·당일배송’이 일상화 되고 소비자는 저녁에 주문한 물건을 다음 날 아침 문 앞에서 받아볼 수 있게 됐다. 심지어 서울은 새벽에도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도록 ‘올빼미 버스’까지 운행하고 있다.
도시의 밤은 화려함을 그칠 줄 모르고 빛나고 있다. 밤을 잊은 도시의 이면에는 소비자 편의를 위해 밤부터 새벽까지 일을 하는 야간근로자들이 있다. 이런 야간 노동은 삶의 패턴을 엉망으로 만든다. 기본적인 수면시간이 부족해 언제나 피곤에 시달리다 보니 건강 악화는 물론 사람들과의 교류도 부족하다. 사람들이 일과를 마치고 모이는 시간대에 일을 해야 하니 지인들과의 만남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 특히 자녀가 있는 집의 경우는 더욱 문제다.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가족 간의 정을 나누어야 할 시간에 일을 하느라 얼굴을 마주할 시간조차 없다. 자녀와의 관계는 소원해지고 그들의 소중한 삶을 가꾸는 것이 점점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생계를 위한 필연적인 노동의 대가라고 하기엔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 정부는 야간근로자 건강권 보장을 위한 제도개선에 나선다고 밝혔다.
지난달 고용노동부 주최로 개최된 근로시간 제도개편 대국민 토론회에서 현행 법제가 야간근로에 대한 규율 및 야간근로자 보호측면에서 매우 취약하다며 개선 방안을 검토한다고 했다.
울산에서도 배달·택배·대리운전 등 야간·이동노동자를 위한 쉼터를 잇달아 조성하고 있다. 울산시가 지난해 남구 달삼로36(달동) 건물 3층에 조성한 실내 이동노동자 쉼터는 오후 1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운영돼 야간근로자들이 휴식을 취하기 용이하다. 또 한편으로는 접근성이 좋고 주차가 편리한 야외에 쉼터가 필요하다는 노동자들의 의견에, 남구는 지난해 2억원의 예산을 들여 야외쉼터 2곳을 조성했다. 삼산동 시외버스터미널 쉼터에는 야간 경관조명을 갖춘 야외벤치와 흡연부스를 설치하고 무거삼거리 쉼터에는 화장실과 흡연부스를 설치했다. 이러한 쉼터는 야간근로자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단초가 되었다는 평가다.
정부나 지자체의 대책 못지않게 우리의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 우리가 여태껏 어떤 시선으로 야간근로자들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생각해봐야한다.
예를 들어 배달기사를 살펴보자. 그들은 빠르고 편리한 배송 시스템을 사수하기 위해 밤새 운전대를 잡고 수많은 계단을 오르내린다. 하지만 배달기사의 노고에 고마움을 느끼기보다는 지불 금액에 따른 당연한 서비스라고 여기는 사람이 대다수일 것이다. 새벽을 낮 삼아 일하는 배달기사의 수고로 우리의 아침 식탁이 따뜻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야간에 24시간 편의점에 가보면 직원들 대부분이 피로에 절은 얼굴로 손님을 맞이한다. 늦은 시간이고 피곤할테니 이해할 수 있다는 손님도 있지만 일부는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야간근로자들에 대한 편견을 깨기에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당장 오늘부터 모든 새벽배송이 중단되고 그 많은 24시간 편의점이 문을 닫는다고 상상해 보자. 그래도 그 노동의 가치를 함부로 평가할 수 있을까. 맡은바 최선을 다 해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배려하는 사회가 되도록 더 응원을 보내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모두가 편히 잠든 고요한 밤, 밤을 잊고 도시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노고가 있기에 오늘도 도시는 살아 움직인다.
김장호 울산 남구의회 복지건설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