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시의 구절이 마치 시 제목처럼 여겨지는 시(詩) ‘황무지’. 시인 T.S.엘리엇은 4월을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는’ 계절이라고 표현했다. 이처럼 라일락은 강인한 생명력과 향기를 갖고 있다.
라일락(lilac)은 영어 이름으로 ‘푸르스름하다’는 뜻의 아라비아어에서 왔다. 프랑스어로는 ‘릴라(lilas)’라고 한다. 현인이 부른 노래 ‘베사메무쵸’의 가사에서 ‘리라꽃 향기를 나에게 전해다오’라는 구절의 ‘리라’가 바로 라일락이다. 원곡 제목인 ‘Besame Mucho’는 besa(키스하다)+me(내게)+mucho(많이)라는 뜻이다.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내게 많이 키스해주세요’라는 뜻이 되겠다. 이처럼 라일락 향기는 첫사랑의 키스만큼 달콤하고 감미롭다.
베사메 베사메무쵸/ 고요한 그날 밤 리라꽃 지던 밤에/ 베사메 베사메무쵸/ 리라꽃 향기를 나에게 전해다오/ 베사메무쵸야 리라꽃 같은 귀여운 아가씨/ 베사메무쵸야 그대는 외로운 산타마리아//…

라일락은 우리 이름 수수꽃다리로도 불리운다. 라일락보다는 작고 동그레한 잎과 꽃의 향기가 진한 미스김 라일락도 있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라일락은 한국 고유종 수수꽃다리를 개량한 꽃이다. 과거 미국의 한 식물채집가가 우리 고유종 ‘수수꽃다리’의 종자를 미국으로 가져가 품종을 개량했고, 이렇게 개량된 꽃이 역수입돼 국내에 퍼진 것이 현재의 라일락 이다.
웃음 짓는 커다란 두 눈동자/ 긴 머리에 말 없는 웃음이/ 라일락꽃 향기를 날리던 날/ 교정에서 우리는 만났소/ 밤하늘에 별만큼이나/ 수많았던 우리의 이야기들/…
가수 윤형주가 부른 ‘우리들의 이야기’는 필자의 학창시절을 대변하는 노래다. ‘라일락꽃 향기를 날리던 날’ 필자와 같은 또래의 남녀 청춘들은 괜히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라일락 꽃그늘 아래로 모여들곤 했다. 서툰 통기타 솜씨로 여학생들의 눈길을 사로잡아보려 애쓰기도 했다. 도종환 시인은 시 ‘라일락꽃’에서 그랬다.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꽃은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라고. 라일락 향기가 추억처럼 퍼지는 계절이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