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것은 틈이 있다지만
튼튼한 것은 갈라진다지만
틈이 견고한 벽을 무너뜨린다지만
갈라지고 갈라지기만 하면
무너짐도 무너진다
틈을 만드는 동안
갈라진 틈에 어디선가
깃털처럼 부드러운 풀씨가 찾아온다
틈은 반짝 희망이었다가 갈라지고 갈라져
사막을 만들기 시작할 때
틈을 내는 투쟁의 손도 갈라진다
틈에는 풀씨가 내려앉고
풀은 흙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풀이 흙을 만들어간다
틈이 자라 사막을 만들어갈 때
풀은 최선을 다해 흙을 만들어 덮는다
거대한 힘을 무너뜨린 틈, 그 틈에서 희망 발견

아스팔트 한가운데 풀이 난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가장자리도 아니고 한가운데에 그것도 손톱 같은 노란 꽃을 키우고 있는 씀바귀라니. 아스팔트가 깨져 흙이 모여든 좁은 틈으로 봄이 손을 내민 것이다. 그러고 보니 풀은 어디에나 있다. 돌이나 시멘트의 갈라진 틈, 폐각목의 그늘, 심지어 버려진 종이컵에도. 한 숟갈 정도의 흙만 있으면 풀은 푸르게 일어선다.
이 시는 틈에 자리잡은 풀에 대해 이야기 한다. 틈은 단단하고 견고한 것을 무너뜨린다. 거대한 힘을 무너뜨리는 틈. 그때 틈은 희망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틈은 갈라지고 갈라지며 무너져가다 마침내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는 ‘사막’을 만들기 시작한다. 이것은 틈의 분열이고 변질이다. 이때 풀이 등장한다. 틈에 내려앉은 풀씨는 스스로 몸을 일으켜 틈을 덮는다. 시인은 ‘풀이 흙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풀이 흙을 만들어간다’고 하였다. 생명의 토대이자 연대의 발판인 흙을 ‘만들어’ 가는 풀. 흔히 우리 같은 창생을 풀에 비유한다면 우리는 만드는 인간, 호모 파베르이다. 무엇을 만드는가. 호미와 언어를, 종이와 컴퓨터를, 그리고 역사를, 사회를.
송은숙 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