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계획시설로 결정된 부지는 원칙적으로 토지소유자의 개발행위가 제한된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토지의 사적이용권이 배제된 상태에서 10년 이상 토지소유자에게 아무 보상을 하지 않는 것은 재산권의 과도한 제한이라고 보고 지난 1999년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장기미집행 도시계획시설’이라는 개념이 처음 도입됐다.
정부는 오랜 기간 사업을 추진하지 않은 도시계획시설로 인한 재산권 침해를 막기 위해 2020년 7월부터 일몰제를 시행했다. 최초 결정 후 20년이 지나도록 사업에 착수하지 않은 도시계획시설을 실효시킨 것이다. 그러나 울산시는 주민 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주요 공원과 도로 계획이 일몰제 때문에 한꺼번에 폐지될 경우 적지 않은 부작용이 발생할 것으로 판단, 도시계획시설의 실효를 막기 위한 단계별 집행 계획을 수립하고 실시계획을 고시했다. 현재까지 울산지역에서 고시된 도시계획시설은 도로 12건, 공원 4건 등 16건에 불과하다. 시는 실시계획 고시 후 5년 내에 토지 70% 이상을 매입한 뒤 사업을 추진해 도시계획시설을 예정대로 활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도시계획시설이 워낙 많은데다 이들을 매입하려면 엄청난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에 울산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다. 그나마 실시계획이 수립된 대왕암공원, 울산대공원, 신천공원, 학성제2공원 등 공원 4건은 보상이 원만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도로시설 상당수는 실효 위기에 처해 있다. 여기다 아직 실시계획이 수립되지 않은 많은 도시계획시설이 시시각각 실효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예산은 없고 꼭 필요한 도시계획시설은 실효되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이 가운데 실효된 공원 등지에서는 개발이 시작돼 민원이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남구 야음근린공원의 경우 석유화학공단과 주거지를 가르는 공해차단녹지 역할을 해왔으나 지난 2020년 7월 일몰제로 공원에서 해제됐다. 이에 LH는 이 곳에 대규모 아파트 건립을 시도하고 있다. 환경단체와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했으나 아직까지 결론이 난 것은 아니다.
도시계획시설 해제는 땅을 가진 주민들의 재산권과 개발업자들의 난개발, 주민들의 도시계획시설 이용권리 등이 맞물려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띤다. 그렇지만 도시계획시설은 도시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점에서 섣불리 포기하거나 흔들려서는 안된다. 울산시는 다른 정책도 중요하지만 특히 도시 미래를 위한 도시계획시설에 대해서는 예산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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