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말고사가 끝났다. 아이들의 표정이 편안하다. 기말고사 기간 학교에는 시험으로 다시 극도의 긴장감이 휘몰아쳤다. 아이들도, 교사들도 시험에 집중했다. 모두 함께 팽팽한 긴장감에 힘들었다. 그리고 현재 학교는 다소 편안한 이완의 시간이다. 그러나 동시에 내신 성적으로 아이들은 힘들다.
잠을 자지 않고 밤새는 아이들, 밤새고 교실에서 쪽잠을 자는 아이들. 시험기간 교실에서 만난 아이들의 모습이다. 마음이 아팠다. 아이들의 모습에서 역시나 학창시절 시험기간 나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우리는 점심시간에도, 청소 시간에도, 자습실에서도, 복도에서도 공부하며 시간에 쫓겼다. 그런데 우리들의 모습을 지금 다시 보는 듯하다. 왠지 슬프다.
‘요즘 애들이 우리 때만큼 공부하지 않는 것 같다’라고 앞 세대는 생각할 지 모른다. 그렇지 않다. 자녀를 둔 부모님들은 생각이 다르다. 곁을 함께 지키며 아이들의 시간을 알기 때문이다. 그 때 우리는 분명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 아이들은 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이들은 우리들의 시간에 그들의 세대에 더해진 시간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안쓰럽다. 그래서 슬프다.
수능 문제 풀이에 집중하는 교실, 책상에 엎드려 자는 아이들. 한 동안 나의 수업시간 모습이었다.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다그쳤다.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안타까워하며 나무랐다. 그러나 아이들은 정직했다. 아이들은 수능 문제를 풀기만 하는 교실 상황이 잘못됐다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수능 문제를 열심히 풀어주며 모든 것을 다한 것인 양 나는 반성이 없었다.
현실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 고등학교의 현실이다. 그러나 현실에만 집중했던 나는 틀렸다. 학교에는 아이들의 미래가 있어야 한다. 수업에는 아이들의 미래를 담아야 한다. 교사들은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함께 말해야 한다. 아이들이 현재를 위해 시간을 보내면서도 현재에 매몰되지 않게 해야 한다. 아이들이 현재를 위해 온 마음과 시간을 쏟아내고 있다. 그 시간은 등수, 내신 점수라는 현실적 수단 이상이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들의 시간과 노력은 그대로 귀하다. 아이들의 시간은 그대로 그들의 모든 것이다.
우리는 남들의 눈을 통해 우리 자신을 본다. 우리를 대하는 그들의 인식과 태도가 우리의 가치관에 투영된다. 그리고 고스란히 한 사람의 중요한 삶의 기준이 된다. 그러므로 학교는 중요한 가치가 아이들의 삶에 투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모든 아이의 ‘삶 자체’를 존중하며 지켜야 한다. 교사의 생각이 중요한 이유이다. 시험이 끝났다. 아이들이 자기 자신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 오고 있다. 방학이다.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시간을 통해 여전히 그들 자신이 소중한 존재임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대로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이현국 울산 학성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