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연다(開)는 것’의 의미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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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연다(開)는 것’의 의미를 생각한다
  • 경상일보
  • 승인 2023.10.3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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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해 시인·울산문인협회장

지난 10월3일은 개천절이었다.

이날은 기원전 2333년, 단군이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으로 고조선을 세운 날을 기리는 국경일이다.

‘개천(開天)’은 암흑의 혼돈으로부터 ‘하늘이 밝게 열린다’라는 뜻으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는 ‘개벽(開闢)’의 의미가 있다.

여기서 ‘열 개(開)’자는 ‘문(門)’과 ‘평평할 견()’자가 결합한 모습인데 양손으로 문빗장을 푸는 형상을 나타낸 것이다. ‘열다’라는 의미 외에도 ‘깨우치다’ ‘시작하다’ ‘펴다’와 같은 뜻도 내포하고 있다.

개통, 개학, 개업, 개교, 개발, 개봉, 개시(開始), 전개 등이 그것인데, 상점을 여는 것은 ‘개점’이며 아무도 손대지 않은 분야의 일을 처음으로 길 닦는 것은 ‘개척(開拓)’이라 한다. 법정을 열어 재판을 시작하는 것은 ‘개정(開廷)’이고 어떤 행사를 시작하는 ‘개회식’도 연다는 의미가 있다.

‘개권유익(開卷有益)’이라는 말이 있다.

책은 펼치기만 해도 유익하다는 뜻이다. ‘책을 열면 세상이 보인다’라는 독서 표어와 함께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는 ‘수불석권(手不釋卷)’은 가을에 가장 어울리는 금언이다.

역시 ‘눈을 뜨다’라는 ‘개안(開眼)’은 사물이나 진리에 대하여 깨닫거나 새로운 의식을 갖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불교적 진리를 깨달아서 안다는 의미도 있다.

‘열림’은 ‘닫힘’과 ‘폐쇄’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지난날 우리나라는 오랜 쇄국의 시대로부터 문호(門戶)를 개방(開放)한 적이 있다.

‘연다’는 것은 주로 ‘문’과 관련이 있는데 다른 지역이나 다른 영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관문(關門)’을 통과해야 한다.

우리는 벽에 뚫린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가고 그 문을 통해 길로 나온다. 벽을 붕괴하면 문이 되고 문을 봉쇄하면 장벽이 된다.

문은 통로와 소통의 기제(機制)이며 벽은 부딪힘과 막힘의 오브제(objet)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문은 벽이 있을 때 존재한다. 그러므로 문을 열지 않고 벽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없다. 벽은 문이 살아갈 수 있는 숙주(宿主)인 동시에 이 둘은 서로 공존할 수밖에 없는 애증(愛憎) 관계에 있지만, 사람들 간에 닫힌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장애가 되는 견고한 벽은 반드시 허물어야 한다.

옛말에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라는 말이 있듯이 적절히 닫을 것은 닫고 열 것은 열어두어야 할 일이다.

어쨌거나 개문발차(開門發車)나 개점휴업(開店休業)이 아니라면 ‘열 개(開)’는 ‘닫을 폐(閉)’보다는 확실히 옳다고 생각한다.

일찍이 세상의 문리(文理)를 깨친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동방의 해 뜨는 나라’ ‘고요한 아침의 나라(朝鮮)’라고 했듯이 대한민국이 언제나 철학이 있는 국가로 활짝 열렸으면 좋겠다.

이미 반만년 전에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큰 뜻’으로 나라를 열었던 ‘개천(開天)’의 의미를 되새기며 알력과 갈등의 시대를 종식하고 화합과 용서의 미래를 열어갈 정신의 ‘개벽’을 기대하며 빛나는 10월을 보낸다.

권영해 시인·울산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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