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도끼[79]]10부. 운명(4) - 글 : 김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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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붉은 도끼[79]]10부. 운명(4) - 글 : 김태환
  • 경상일보
  • 승인 2024.09.0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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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환을 알게 된 것은 순전히 마츠오 때문이었다.

“반곡에 김일환이라는 사내가 있는데 참 고약한 놈이오. 무식한 주막집 놈이 나를 가르치려 한단 말이오.”

처음에 마츠오가 김일환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다. 그저 마츠오가 김일환의 주막에 들러 밥을 한 끼 사먹었구나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게 아니었다. 김일환이 주막집을 하는 조선사내치고는 아는 게 많다는 것이었다. 마츠오의 표현대로라면 별로 아는 것도 없는 조선 놈이 잘난 척 한다는 것이었다. 마츠오의 기준으로 보면 신식학교에 다니지 않은 조선 사내들은 모두 무식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하루는 마츠오가 내가 근무하는 두서면사무소로 찾아왔다. 얼굴에 붉은 홍조가 나타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대뜸 한다는 소리가 이번 주말에 김일환이란 자와 천전리 서석곡에 가자는 것이었다. 나는 이유도 묻지 않고 바로 승낙을 했다.

주말마다 성당에서 에리코를 만날 수 있었던 것도 마츠오와 친분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나는 국적을 떠나서 마츠오와는 진심으로 마음이 통하는 친구라고 생각했다. 문제가 있다면 내가 그의 아내 에리코를 너무 사랑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날은 장마철인데도 햇볕이 쨍쨍했다. 야외로 놀러가기에 딱 알맞은 그런 날씨였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천전리 서석곡으로 바로 갔다. 구량마을을 지나 냇가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앞에 걸어가는 김일환과 마주쳤다. 그는 노끈을 꼬아 만든 망태를 어께에 메고 있었다.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몰라도 제법 무게가 나가는 물건이 들어 있는 듯했다. 아마도 간식으로 먹을 감자를 삶아 담은 것 같았다. 나는 자전거를 세우고 김일환을 뒷자리에 태웠다.

서석곡 입구에 도착하여 자전거를 세워놓고 서석이 있는 곳으로 갔다. 마츠오는 아직 오지 않았다. 김일환은 서석 앞에 도착하자마자 두 손을 모으고 정중하게 합장을 했다. 나는 그의 모습을 멀거니 바라보기만 했다. 합장을 하고 허리를 굽혀 세 번 절을 한 뒤 나에게 말했다.

“조선인이라면 이곳에 경배를 해야 합니다.”

“그건 왜요?”

“여기가 조상들의 혼이 살아 있는 우리의 뿌리와 같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왜놈 쪽바리들 하고는 견줄 수 없는 대단한 곳이죠.”

그의 입에서 일본인을 비하하는 쪽바리란 말이 거침없이 나왔다. 나는 그런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누가 듣기라도 하는 날에는 큰일이 날 소리였다. 아직 마츠오가 도착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나는 마츠오 앞에서는 절대로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김일환은 나의 참견도 몹시 못마땅하다는 표정이었다.

잠시 후에 마츠오가 도착했다. 정복을 벗고 사복차림이었다. 당꼬바지에 흰 셔츠를 받쳐 입은 마츠오의 차림새는 무척 세련되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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