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이수정 ‘꽃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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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이수정 ‘꽃 지다’
  • 차형석 기자
  • 승인 2024.10.14 0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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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은 밀랍 속에 있다.

꿀을 모으던
손 하나가
하르르 무너져 내린다.
다른 손 하나가 또
무너져 내린다.
손들이 종일
무너져 내리고 있다.

천 개의 손을 가진 관음의
손들이
꿀이 아닌 쪽,
아래로 떨어져
아픈 땅을 덮고 있다.



천수관음의 손처럼 아픈 땅 어루만지는 꽃잎

▲ 송은숙 시인
▲ 송은숙 시인

천수관음은 본래 이름이 천수천안관세음으로 천 개의 손에 천 개의 눈을 가진 관음보살이라고 한다. 천 개의 눈으로 중생의 고통을 보고 천 개의 손으로 중생의 고통을 구제하고자 하니, 바로 대자대비의 화신이다. 그래서 천수관음의 손은 달콤한 꿀이 아니라 ‘아픈 땅’을 향하고 있다.

이 시에는 꿀을 모으던 손도 등장한다. ‘꽃 지다’라는 제목을 생각한다면, 이 손은 벌을 불러모으는 소임을 다하고 가을에 떨어지는 꽃잎일 것이다. 꽃잎이 지면 꿀은 밀랍 속에 안전하게 저장되어 달콤하게 익어갈 테고 날은 곧 서늘해지고 어둠은 짙어진다.

하지만 꿀을 모으는 손을 벌처럼 부지런히 일하는 ‘노동하는 손’으로 본다면, 그 손이 자꾸 무너진다는 것은 일터가 파괴되고 일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전쟁의 굉음이 들리는 곳이 그런 곳일 터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은 말할 것도 없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으로도 1년 사이에 벌써 4만여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잘리어 떨어지는 꿀을 모으는 손. 이 손은 곧 천수관음의 손이기도 하다. 아픔을 아는 사람만이 다른 아픔을 어루만질 수 있는 것처럼, 손이 손을 감싸고 손이 손을 치유한다. 옛날엔 밀랍으로 양초를 만들었다. 제단을 밝히는 양초를. 어둠을 이기는 빛을. 송은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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