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정감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매년 일정기간을 정해서 실시하는 국정감사는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제도다. 다른 나라의 경우 의회의 행정감독은 일상적인 것이므로 청문회나 질의를 통해서 수시로 진행되는 반면, 우리는 예산 심의가 시작되기 전 약 3주에 걸쳐 중앙정부, 지방정부, 공공기관 등을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국정감사가 실시된다.
국정감사 기간이 되면 국회의원은 ‘갑 중의 갑’이 되고, 피감기관은 감사준비로 연중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의원들은 의원들대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다. 그래서 튀는 복장을 하거나 심지어 동물들을 데리고 국감 현장에 등장하기도 한다. 언론에 한 줄이라도 보도되기 위해서 한편 유치하기도 하지만 나름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국감의 가장 큰 목적은 국민의 시각에서 행정부의 정책활동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국감을 통해 얻어지는 정보와 자료를, 바로 이어지는 내년도 예산 심의에 반영해 행정부의 활동이 지속적으로 보다 효율적이고 민주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국감의 존재 이유다. 독특한 소품이나 아이돌 연예인을 등장시키는 행위도 이런 목적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긍정적으로 보아줄 수가 있다. 그러나 올해 국감의 화두는 지나치게 ‘여사와 대표’에 집중돼 있다. 거의 대부분의 국감장에서 야당이 제기하는 이슈는 결국 ‘여사’의 문제로 귀착되고 있다. 이에 대항해 여당은 ‘야당 대표’를 집중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물론 여와 야의 최고 권력자와 그 주변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고 잘못을 바로잡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안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이슈가 이것밖에 없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북한의 핵위협과 우크라이나 파병, 미국의 대통령 선거, 얼어붙은 국내경제, 더욱 심해지는 양극화 등 국내외적으로 불확실성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여사 특검과 대표 방탄’만 거론하고 있을 것인가.
우리 국회의 특징 중의 하나는 호통과 고성 그리고 정회 패턴이다. 정확한 분석을 토대로 행정부의 미흡함을 차분하게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소리를 지르고 본다.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자기주장만 늘어놓는다. 그러다가 여야 설전이 벌어지고 회의가 중단된다. 질문의 내용보다는 얼마나 투쟁적인 자세로 임했는가가 더 중요하다. 답변준비를 위해 하루 종일 대기해야 하는 공무원들과 증인, 참고인들은 허탈할 뿐이다.
이와 같은 우리 국회의 파행적 모습은 정치적 보상체계가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열심히 국감 준비를 해서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해도 별로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 소리를 지르고 자극적인 언사를 내뱉어야 지지층이나 언론의 관심을 받는다. 정작 선거구의 유권자들은 자신들이 뽑은 국회의원들이 국감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시간과 비용을 들여 제대로 된 국감을 해도 알아주는 사람들이 없으니 그저 여사나 대표를 거론하며 호통을 치는 것이 훨씬 더 편하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수선한 국감 와중에서도 새롭고 중요한 사실들이 밝혀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인터넷 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이 급격히 증가했고, 금연구역에서의 불법흡연으로 시민들의 건강권이 침해되고 있음이 이번 국감에서 드러났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사안들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제기들은 언론이나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정치적 이슈에 묻혀 버렸다.
우리나라의 국정감사는 일정기간 동안 국회가 모든 행정부의 활동을 집중적으로 평가하고 비판하며 대안을 모색하는 거의 세계 유일의 제도다. 국회의 간섭을 싫어했던 권위주의 정권은 국감을 폐지했으나 민주화 이후에 다시 부활됐다. 국감은 역사적으로나 권력분립의 헌법정신에 비추어 보거나, 민의를 반영해 국가의 발전을 도모하는 매우 중요한 제도다. 부디 남아 있는 국감 기간만이라도 국회와 행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차분히 국정을 논의하는 장면을 보여주기 바란다.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