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일보 지령 10000호 릴레이 칼럼]경상일보 주주로 보낸 보람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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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일보 지령 10000호 릴레이 칼럼]경상일보 주주로 보낸 보람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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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11.1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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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언 세민요양병원 진료원장

35년 전 어느 날 내가 운영하고 있는 병원에 정창화와 김종수 두 분이 찾아왔다. 이들 둘은 울산에 신문사를 만들 계획이라면서 주식을 5000만원어치만 사달라고 했다. 이 금액은 당시로는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는 많은 돈이었다. 그래서 속으로는 찬동했지만 그렇게 많은 돈이 없어 머뭇거리자 당시 울산투자금융사장이었던 정창화씨가 회사 돈을 대부해 주겠다면서 앞으로 천천히 갚으면 된다고 했다. 경상일보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후 원금과 이자를 갚는 데 3년이나 걸렸고 그 때마다 아내로부터 쓸데없는 행동을 했다고 핀잔을 받았다.

초창기 조돈만 편집국장이 객원논설위원을 위촉해 전문 지식이 필요한 글을 부탁할 때는 건강과 보건 관련 사설을 썼다. 그 뒤 조 국장이 울산에 ‘싱크탱크’ 역할을 할 포럼을 만들자는 제안을 해 ‘울산포럼’을 창립하는데도 함께 참여했다. ‘울산포럼’은 당시 이석호 주리원 백화점 대표가 회장으로 있으면서 여러 차례 공개토론과 심포지엄을 개최해 환경, 산업구조개편, 울산항개발, 월드컵문제 등 10여년 넘게 지역 현안을 다루었다.

이후 울산시가 울산발전연구원을 만들자 ‘울산포럼’의 역할이 줄어들고 이 회장도 서울로 가는 바람에 김동수 박사가 대표가 되었다. 그리고 매월 조찬 모임을 지속하며 종래와 달리 전문인의 글을 모아 <체인지 울산(Change Ulsan)>이라는 잡지를 발간해 관계 요로에 보내었다.

울산포럼을 통해 여러 명의 시·구의원과 두 명의 국회의원이 배출되었다. KTX역 울산 유치안도 이 모임에서 김성득 당시 울산대 교수가 처음 발의했다. 이런 각종 모임을 하는 동안 경상일보가 회의 내용을 빠지지 않고 보도해준 것을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 태화강 국가정원 십리대숲.
▲ 태화강 국가정원 십리대숲.

나는 1972년 처음 울산에 왔는데 당시 인구가 겨우 20만에 불과했다. 이 무렵 나는 소아과 전문의 자격을 얻고 미국의사시험(ECFMG)에 합격한 후 미국 병원에 취업이 결정될 때까지 1년 정도 울산에서 영어도 배우고 돈도 모을 겸 선배 병원에 소아과장으로 근무했다. 그런데 어느 날 옥교동 신성반점에 갔다가 이 식당 중국인 주인을 보면서 나도 미국에 가면 돈은 많이 벌고 좋은 집에서 살 수 있겠지만 나라 없는 처량한 신세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울산에서 개업키로 결정하고 소아과 전문 의원을 차렸다.

당시만 해도 울산은 산업도시로 공해 천국이었다. 공단이 뿜어내는 공해로 사흘마다 와이샤쓰를 갈아입어야 했고 흐린 날에는 도시 어디를 가든 메케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또 문화시설이라고는 영화관밖에 없어 울산에서 돈을 번 후 애들은 고향인 대구에 가서 키워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개업 수 년 뒤 대구로 가자고 애들에게 말했더니 애들이 하나같이 “아버지 고향은 대구지만 우리 고향은 울산으로 우리는 대구보다 울산이 더 좋아요”라고 말했고 이런 생각은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 나는 대구로 가기보다는 울산을 우리 애들이 잘 살 수 있는 도시로 만들어야 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나는 울산을 좋은 도시로 만들 수 있는 일이라면 빠지지 않고 참여했는데 이 무렵 경상일보 주주 제의를 받고 응했다.

이후 나는 YMCA 창립 멤버가 되었고 경실련 초대 공동대표와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태화강보전회 부회장, 울산국악협회 회장, 문화도시울산포럼 대표를 지내면서 활발히 활동했다. 또 울산로타리와 3720 지구 총재보좌역 그리고 와이즈멘즈클럽 회장 등 국제봉사단체에서도 활동했다.

경실련 대표 시절에는 동해화력발전소 공장 증설문제로 서울서 실무자들이 울산에 와 만난적이 있는데 이 때 나는 이들을 향해 “울산시민의 건강을 위해 벙커시유 유황농도를 1.5%에서 1%로 줄여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나는 실무자에게 “아우슈비츠를 아느냐. 히틀러는 가스로 600만 유대인을 일시에 죽였지만 동해화력은 지금도 공장운영으로 대기오염이 심각한데 또 다시 증축하면 이 도시 어린이들과 시민들이 서서히 죽어갈 것이다”고 호통쳤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소아과 의사인데 공단 주변에서 호흡기질환으로 병원에 오는 어린이들이 아무리 치료해도 낫지 않고 치료해 놓아도 또 재발한다”면서 이 요인이 공해에 있다고 항변했다.

얼마 뒤 회사가 유황농도를 0.5%로 내리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해 놀란 적이 있는데 동해화력이 이런 결정을 한 이면에는 당시 한전 감사로 있었던 심완구 전 시장의 지시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심 전 시장에게 고맙게 생각했다.

이후 울산 공기는 확연히 좋아졌지만 1991년 8월 불어 닥친 태풍 글래디스로 태화강이 범람해 수해가 커지자 이 피해가 대나무 숲 때문에 생긴 일이라면서 울산시가 대숲을 베어내겠다는 연락을 해왔다. 당시 국토관리법으론 하천에는 1m이상 나무는 못 심게 되어있었는데 태화강에는 대숲이 있어 또 다시 수해를 입으면 공무원이 문책을 당할 것을 두려워해 내린 결정이었다. 이 때 ‘태화강보전회’가 20만 시민의 진정서를 받아 국토부와 청와대 그리고 국회에 보내 간신히 대나무를 살려내었다. 그리고 ‘내셔날 트러스트운동’으로 강변의 개인소유 땅을 회원들이 사들여 오늘의 국가정원이 되는데 기여했다.

내가 울산을 위해 이렇게 뛰고 있는 동안 온갖 풍상을 이겨내고 울산 발전을 위해 많은 일을 해온 경상일보가 지령 10000호 기념식을 가졌다. 기념식을 보면서 그동안 주주로 배당금이나 돈 한 푼 받은 일이 없지만 내가 울산을 위해 여러 단체에서 돈과 시간을 투자했지만 그 중에서도 경상일보 주주가 된 것이 가장 큰 보람되었던 일인 것 같아 기쁘다.

김용언 세민요양병원 진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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