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계엄령이 선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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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계엄령이 선포되었다
  • 경상일보
  • 승인 2024.12.1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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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희 미국변호사

그때 나는 하루의 피로를 안고 잠자리에 누워있었다. 그대로 잠들지 않았던 것은 무슨 비범한 예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집 위로 지나가는 비행기 소리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성남에는 공군성남기지가 있는데, 낮에 이따금 들리던 비행기 소리가 무슨 일인지 깊은 밤인데도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일어나 창문 밖을 보니 13층 건물에서도 날개를 선명히 볼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지나가는, 여객기는 분명히 아닌 비행기들이 계속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이때부터였다.

인터넷 뉴스포털에서 확인한 비상계엄 선포 소식은 비현실적이었다. 눈으로 읽었는데, 머리로 이해가 안 되어 한참 애를 먹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비로소 실감하였을 때는 국회 경내에 진입한 계엄군을 TV에서 보고 나서였다. 2024년 12월3일 밤 10시27분, 한국에서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될 때까지, 유선 채널로 CNN과 NHK, 온라인으로 구독하는 워싱턴 포스트 같은 외신들과 MBC 같은 국내 방송사들이 보내는 소식을 오가며 확인하려고 애쓴 것은 지금 사태를 보고 머릿속에 든 생각이 주관이나 편견이 아닌 객관적인 해석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모든 것을 물리치는 정치적 당위의 주장은 별론으로 하고, 이번 계엄은 헌법 제77조 제1항과 계엄법 제2조 내지 제4조의 요건을 충족한 것인가?

같은 밤 11시27분 계엄사령관 박안수는 포고령 제1호에서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는 명령을 내렸다(포고령 제3항). 명령의 이유는 내부에 암약하고 있는 반국가세력의 체제전복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였고, 군부는 명령을 어기면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 위반자로 처단하겠다 했다. 참고로 미국의 경우 현재까지 연방 또는 주 정부에 의한 총 68번의 계엄령(martial law) 선포 사례가 있었다. 선포 사유는 내전을 포함한 전쟁이나 자연재해, 폭동 또는 정치 소요였으며, 이 크고 작은 계엄령 선포 사례들 가운데 미국 연방헌법 제9조 제1항에서 규정한 인신보호영장제도 (Habeas corpus)가 정지된 경우는 1863년 남북전쟁 단 한 번뿐이었다. 다행히 이 포고령은 이제는 법적 효력을 상실했고, 지금 나는 경상일보의 독자들이 읽는 이 글을 내 자유의지로써 쓴다.

이번 계엄이 평화적으로 적법한 절차를 지켜 단숨에 저지된 덕분에, 그리고 계엄군에 의해 목숨을 잃거나 행방불명된 사람들이 없었던 까닭에, 많은 이들이 기존의 정치적 입장을 유지한 채 계엄을 찬성·지지한다. 천둥은 천둥이고 울산사람은 울산사람의 삶을 영위해야 한다는 심오한 말이 정치인에게서 나온다. 무단히 선포된 계엄은 평화로운 일상과 양립할 수 없다는 상식은 울산의 어디쯤에 머물러 있는가.

계엄 다음날, 미국 국무부는 장관 성명을 통해 이번 계엄 해제를 환영하며 이후에도 한국이 법의 지배에 따라 평화로운 방식으로 정치적 갈등이 해결되기를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군대의 무력으로 위협이 촉발되어도 그 해결은 평화로써 이루어져야 하니 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는 지금껏 내가 누려온 평화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며 살고 있었구나 하는 깨달음에 낭패스러웠다.

2021년 1월에 있었던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 사건처럼, 민주주의와 법에 의한 통치는 어느 나라에서 어느 한순간 완성되어 저절로 유지되는 이념과 제도가 아니다. 소식을 듣자마자 하루 노동의 고단함과 세밑의 한파를 무릅쓰고 밤 깊은 시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달려간 시민들 모두에게도 영위해야 할 자신들의 삶이 있었다. 그들은 공무원들도 아니었고 정치인도 법률가도 아니었지만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해 경찰과 군사용 헬리콥터가 실어 나르는 무장 군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 자리에 모였던 남녀노소 시민들과, 자신의 직무를 받들어 수행한 입법부의 구성원들, 그리고 무도한 명령에 복종하길 주저한 병사들 모두께 깊이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한다.

이준희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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