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엔 쉴 틈이 없었지만, 요즘은 하루 세 켤레도 드물어요.”
정장·구두 착용 문화의 변화와 저렴한 대체품 확산으로 구두 수선 수요가 급감한 가운데 울산의 장애인 생계형 일터였던 ‘구두병원’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구두병원은 울산 장애인들이 주체가 돼 구두 수선 및 제작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대표적인 일자리 모델 중 하나였다.
‘울산개미봉사회’를 중심으로 지역 곳곳에서 활발히 운영돼 왔고 한때 물량이 너무 많아 ‘구두를 놓을 곳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지역 경기 호조와 정장·구두가 일상화된 사회 분위기가 맞물리며 수요가 꾸준히 증가했고, ‘아침에 맡기고 저녁에 찾는’ 밀착형 생활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환경이 급변하며 구두병원은 쇠락기를 맞았다. 과거 직장인의 필수품이었던 구두가 점점 기능성 운동화나 슬립온, 단화 등으로 대체되면서 수요가 감소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기점으로 원격근무와 재택근무 등이 늘어나며 정장이나 구두를 신을 필요가 줄었고, 이후 캐주얼 복장 중심의 문화가 완전히 정착돼 구두 수선 수요도 함께 흐릿해졌다.
이와 함께 수선 비용보다 저렴한 저가 신발이 시장에 우후죽순 유통되면서 점차 ‘수선’보다 ‘교체’를 선택하는 시민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울산시청 인근에서 30년 넘게 구두를 고쳐온 박봉이(69)씨는 “예전에는 돌아앉을 틈 없이 바빠 아내와 함께 일해야 했지만, 요즘 손님이 줄어 아내는 다른 곳으로 일자리를 구해 떠났다”며 “오늘도 하루 종일 기다렸지만 단 3건의 주문만 받았다”고 말했다.
동구에서 구두병원을 운영중인 김은식씨도 “과거에는 수선 주문이 밀려 정신없이 일하던 날도 많았지만, 요즘은 하루종일 일하고도 5000원, 1만원을 벌기 힘들 때도 많다”며 “정장을 입는 이들이 줄다 보니 구두를 들고 오는 손님 자체가 거의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들이 소속된 울산개미봉사회는 2000년대 초만 해도 100곳이 넘는 구두병원 회원들이 참가하며 단단한 커뮤니티를 형성해 왔다. 하지만 최근 정기 모임에는 10곳도 채 되지 않는 수선소만 참여했고 그나마 운영 중인 구두병원 중에서도 고령화와 건강 악화 등의 이유로 휴업 중인 곳이 많다.
김학수 울산개미봉사회 회장은 “과거에는 일정한 수익이 있어 생계 유지는 물론 지역 사회 환원도 가능했지만, 지금은 손님 자체가 줄어 사업을 유지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회원 대부분이 장애를 가진 고령자들이고 이들에게 있어 ‘구두병원’은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오랜 시간 일해온 유일한 일터이기에 떠나지 못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어갈 수 있을 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글·사진=김은정기자 k2129173@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