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문화적 위상을 바꿀 세계적 공연장의 밑그림이 공개되었다. 국제적 명성을 지닌 비야케 잉겔스 그룹(BIG)과 장 누벨,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문박디엠피와 더시스템랩이 제안한 네 가지 설계안은 저마다 독창적인 조형성과 공간 철학으로 시민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약 50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울산 세계적 공연장은 예산 규모 면에서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버금간다. 건축 초기, 파격적인 조형성과 막대한 예산으로 거센 비판을 받았던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이제는 연간 2000만명이 찾는 대한민국 대표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은 울산 세계적 공연장 선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웅변한다.
그러나 세계적 공연장이 진정한 성공을 거두려면, 화려하고 독창적인 외관이 주는 시각적 충격을 넘어 반드시 직면해야 할 본질적 과제가 있다. 건축은 단순히 외부에서 감상하는 박제된 오브제가 아니라, 그 안에서 사람과 예술이 유기적으로 교감하며 숨 쉬는 생명력 있는 공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많은 건축 공모전은 외부에서 바라보는 건축물의 외형, 즉 익스테리어를 평가의 최우선 기준으로 삼아왔다. 랜드마크로서 상징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당위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시민과 예술가가 공감을 나누는 곳은 건축물의 표피가 아니라 내부 공간이다. 특히 공연장처럼 머무는 시간이 긴 공간에서는 내부에서 외부를 바라볼 때의 시각적 경험이 공간의 질을 좌우한다.
공연장이 들어설 삼산매립지의 장소성과 상징성은 매우 극적이다. 그러나 공연장 안팎에서 마주하게 될 풍경은 태화강 국가정원의 초록빛만이 아니다. 강 건너편에는 현대자동차의 거대한 회색 공장들이 즐비하고, 태화강 하류와 돋질산 너머에는 산업단지의 차가운 플랜트들이 시야를 압도한다. 따라서 공연장과 조경, 외부 경관을 일관되게 통제하고 재해석하여, 공연장의 다양한 공간에서 시선이 닿는 모든 요소를 선제적으로 디자인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접근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시선의 선택적 여과, 즉 프레이밍(Framing) 디자인이다. 창호의 위치와 크기를 정밀하게 설계하여 삭막한 공장 하단부는 건축적 구조체로 차폐하되, 태화강의 수평선과 산업 시설의 역동적인 상부 실루엣만을 액자 속 그림처럼 담아내는 방식이다. 둘째, 산업 유산의 예술적 승화다. 주변을 감싸고 있는 산업단지를 무조건 숨기기보다, 디지털 프레임이나 미디어 파사드를 활용해 밤이면 산업단지의 풍경이 마치 무대 배경처럼 예술적으로 펼쳐지는 증강된 경관을 구축해야 한다. 산업단지의 현실을 울산만의 독창적인 ‘인더스트리얼 럭셔리(Industrial Luxury)’로 재해석하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또한 필자가 지난 기고에서 강조했듯이, 공연장의 본질적 가치는 결국 소리에 있다. 아무리 외형이 아름다워도 최상의 음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것은 공연장이 아니라 거대한 관람석에 불과하다. 울산 세계적 공연장은 클래식부터 다양한 유형의 음악까지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고도의 음향 기술이 집약되어야 한다. 잔향 시간의 정밀한 설계는 물론, 소리의 확산을 돕는 내부 벽면의 미세한 질감과 구조적 형상까지 반영한 세심한 공간 설계는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기준이다. 특히 삼산매립지의 지반 특성과 인근 철도에서 유입되는 미세한 진동 및 소음을 완벽히 차단하는 기술은 공연장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다. 세계적 수준의 음향 컨설팅을 거쳐, 관객이 어느 좌석에 앉더라도 연주자의 미세한 숨결까지 공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소리의 보석상자’를 구현해야 한다.
2028년 국제정원박람회가 선사할 ‘비움의 치유’에서 시작해 2031년 공연장 완공이라는 ‘문화적 채움’으로 완성될 이 4년의 여정은 울산의 새로운 연대기를 기록하는 시간이다. 건축물은 그 공간을 향유하는 시민들의 자부심과 행복이 투영된 도시의 얼굴이기에, 우리는 이제 단순히 ‘보여주는 건축’의 유혹을 넘어 예술과 일상이 공존하는 진정한 ‘문화의 공간’을 준비해야 한다. 2031년 우리가 마주할 울산 세계적 공연장은 단순한 물리적 실체를 넘어, 산업 수도 울산의 정체성을 명품 문화 자산으로 승화시키겠다는 미래를 향한 가장 담대한 선언이 될 것이다.
이규백 울산대학교 교수 울산공간디자인협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