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저성장시대의 기업경영, 복잡도를 관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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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저성장시대의 기업경영, 복잡도를 관리하라
  • 경상일보
  • 승인 2020.09.15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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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 골목식당 핵심 솔루션처럼
기업들 과거 확장전략에서 벗어나
사업영역·관리범위 단순화 고민을
▲ 김기범 울산과학대학교 안전및산업경영공학과 교수

‘백종원의 골목식당’이라는 TV프로그램이 있다. 침체된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 외식업계의 마이다스의 손이라고 불리는 백종원씨가 소규모 식당들을 찾아다니며 다양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들에게 제시하는 솔루션 중의 하나는 메뉴의 수를 줄이는 것이다. 백종원씨는 메뉴의 수를 줄이면 여러가지 이점이 있다고 설명한다. 우선 조리법이 단순해지고 빨라져서 고객의 주문에 대응하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 또한 메뉴가 줄어듦에 따라 관리해야 하는 식자재의 종수도 줄어들어 재고 회전율을 높일 수 있고 이를 통해 고객에게 맛있고 신선한 음식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메뉴의 수를 줄이자는 개념은 장기간 저성장 시대를 겪는 기업 경영에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과거 경제 성장기에는 물건을 만들면 무조건 팔리는 시대였다. 매출이 오르고 이에 따른 수익성도 보장되는 시기에 기업들은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디자인, 색상, 기능을 다양화해 생산하는 모델의 종수를 늘려 나갔다. 이 과정에서 원가절감을 위해 해외에 공장을 세우고, 더 싸고 좋은 부품을 찾아 전세계로부터 원자재를 조달했다. 또한 국내외로 다양한 판매루트를 개척해 시장을 확장했다. 만드는 제품의 종수가 많아짐에 따라 자재, 설비, 공정은 물론 관리해야 하는 협력사의 수도 증가했고, 판매를 위한 유통채널의 확장에 따라 창고 등의 물류설비 및 재고량도 증가했다. 그리고 이에 따른 운영 비용의 증가는 이보다 더 가파르게 오르는 매출곡선에 가려져 잘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고객은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는 국면에 접어들면서 이제는 더 이상 만들어도 잘 팔리지 않는 시대가 됐다.

성장하지 않는 시장에 이미 진입해 있는 기업들의 경쟁은 날로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매출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고, 매출에 비례해 발생했던 수익은 답보상태를 유지하거나 오히려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난다. 과거에 추진했던 확장전략으로 인한 운영 비용의 증가가 매출이 증가하는 속도보다 훨씬 더 빠르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경영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복잡성의 저주’라는 용어로 표현하기도 한다.

기업경영에 있어 ‘복잡성의 저주’를 경험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먼저 복잡성을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골목식당에서 백종원씨가 메뉴판을 유심히 보고 각 메뉴별로 판매량과 고객반응, 그리고 조리시간, 필요 식자재 등을 분석하는 것처럼 현재의 사업영역과 그에 따른 관리범위 즉, 제품개발, 자재공급, 생산, 유통 단계에서 발생하는 복잡도를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사업별 수익성과 그에 상응해 발생하는 관리비용의 규모를 산출하고 이 때 제품군 또는 단위모델별 기업의 수익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현재의 관리 수준으로 감당해 낼 수 있는 복잡도의 범위를 설정하고, 이 범위 내에서 기업 활동이 이루어지도록 관리해야 한다. 물론 현재의 기업 회계구조상 복잡도로 인해 유발되는 비용을 한번에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전체적인 관점에서 관리 시스템을 바라보고 복잡한 조직에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경영 활동일 것이다.

백종원씨는 골목식당에서 이렇게 말한다. “메뉴의 수를 줄이면 초반에는 확실히 손님이 줄 수밖에 없다. 메뉴가 많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제대로 된 한두개의 메뉴가 필요하다.” 그가 추구하는 단순함에 대한 철학은 장기화된 저성장 시대를 힘겹게 지내고 있는 기업들이 반드시 생각해 봐야 할 이슈이다. 김기범 울산과학대학교 안전및산업경영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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