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오후 7시23분께 북구 명촌교 인근 억새밭 5~6곳에서 불이 나 약 3만5000㎡ 규모의 억새 군락이 불에 탔다. 다행히 화재로 인한 인명피해는 없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담배불 등에 의한 실화나 방화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
다음 날인 25일 찾은 화재 현장은 불길이 휩쓸고 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명촌교 아래에서부터 하천변을 따라 이어지던 억새 군락은 자취를 감췄고 검게 그을린 땅 위로 잿더미만 넓게 펼쳐져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탄 재가 흩날렸고 곳곳에는 뿌리만 남은 억새 줄기들이 힘없이 서 있었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인근 아파트 주민들은 “비슷한 시각에 몇 군데에서 붉은 불기둥이 동시에 솟아올랐다”며 “강한 바람을 타고 탄 냄새가 순식간에 아파트 인근까지 퍼졌다”고 설명했다.
불이 난 곳은 태화강 명촌 억새군락지 일대로 북구가 ‘북구12경’으로 지정해 관리 중인 대표적인 생태경관 구간이다. 물억새가 넓게 군락을 이뤄 가을철 명소로 알려져 있을 뿐 아니라 평소에도 시민들의 산책과 휴식 공간으로 활용돼 왔다.
특히 이 일대는 고라니와 토끼, 철새 등 각종 야생동물이 은신하고 이동하는 보호구역이다. 그러나 이번 화재로 억새밭이 광범위하게 소실되면서 생태계 훼손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지역 환경단체 사이에서는 이번 화재의 생태적 영향에 대해 엇갈린 분석이 나온다.
이상범 울산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억새의 특성상 이번 화재로 묵은 억새가 제거되면서 새로운 생육환경이 조성돼 억새 생육에는 오히려 유리한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해당 구역이 지역의 대표적인 야생동물 서식지라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이상범 울산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역시 “이곳은 고라니와 토끼들이 몸을 숨기며 살아가던 공간”이라며 “당장에 큰 피해는 없을 수 있지만 불로 인해 은신처가 사라지면서 야생동물의 생존 환경에는 혼란이 있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홍승민 짹짹휴게소 대표는 “그동안 야생동물이 서식하는 억새밭 바로 옆에 산책로가 조성되고 주거지와도 맞닿아 있어 사람의 접근이 지나치게 가까운 구조였다”며 “보호구역이라는 명칭에 걸맞은 관리가 이뤄졌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근 아파트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북구12경으로 불리며 가을마다 사람과 새들이 몰려들던 명소 한가운데가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했다”며 “지역 명소라면 이름뿐 아니라 관리 역시 그에 걸맞게 이뤄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글·사진=김은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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